“정신 집중 위해… 썰매 타기전 악~ 소리 지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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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곳 꿈꾸는 한국 썰매

①윤성빈은 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리턴연맹(IBSF) 스켈리턴 세계선수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②8차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더해 올 시즌 ‘8개 대회 연속 메달’을 기록한 윤성빈. ③2013년 북아메리카컵에 나선 원윤종-전정린 조. 전복 사고 이후 해체 위기였던 봅슬레이팀은 마지막 기회였던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희망을 이었다. ④소치 올림픽 이후 서영우가 발목에 새긴 오륜기 문신. ⑤맬컴 로이드 주행코치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5차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금메달을 딴 원윤종-서영우에게 로이드 부인은 특별 제작한 메달을 선물했다.
①윤성빈은 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리턴연맹(IBSF) 스켈리턴 세계선수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②8차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더해 올 시즌 ‘8개 대회 연속 메달’을 기록한 윤성빈. ③2013년 북아메리카컵에 나선 원윤종-전정린 조. 전복 사고 이후 해체 위기였던 봅슬레이팀은 마지막 기회였던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희망을 이었다. ④소치 올림픽 이후 서영우가 발목에 새긴 오륜기 문신. ⑤맬컴 로이드 주행코치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5차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금메달을 딴 원윤종-서영우에게 로이드 부인은 특별 제작한 메달을 선물했다.
세계 랭킹 1, 2위로 금의환향한 봅슬레이 원윤종(31·강원도청), 서영우(26·경기도BS경기연맹)와 스켈리턴 윤성빈(22·한체대).

이들이 귀국한 1일 인천공항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1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3년 전 이맘때 서영우는 봅슬레이를 포기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는데 마치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며 “우리가 잘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썰매도, 외국인 코치는 물론이고 실업팀도 없던 시절. 이용 봅슬레이·스켈리턴 국가대표 감독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라 할 말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원윤종 역시 그맘때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스위스의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2∼2013 세계선수권에서 썰매가 뒤집어졌고, 브레이크맨이었던 석영진(26·강원도청)은 어깨에 피부 이식술을 받아야 했을 만큼 크게 다쳤다. “지금도 크게 남은 흉터를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제 조종 미숙으로 다쳤으니까….”

이 감독의 마음도 편할 리 없었다. “주로 미주 트랙만 타다가 소치 겨울 올림픽을 위해 유럽 트랙을 경험하려고 나간 대회였다. 우리가 유럽에 썰매가 없으니 빌려야 했는데 누가 좋은 썰매를 빌려주겠나. 결국 정말 낡은 썰매를 빌렸다. 장비에 결함이 있었는데 원 선수는 자신의 주행이 부족해서 동료가 다쳤다는 생각에 상처가 컸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런 식으로는 평창 메달 가능성이 없다. 감독과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썰매만 있으면 성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이 감독은 “마지막 한 번만 원하는 썰매로 대회에 나가게 해 달라”고 연맹에 요청했다. 결국 마지막 기회를 받고 나간 북아메리카컵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때 실패했다면 아마 저도, 선수도 다 없었을 거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원윤종 역시 이 감독에게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 선수들로 올림픽 갈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압박이 심했을 텐데 감독님은 ‘괜찮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저희가 운동만 할 수 있도록 혼자 다 정리를 해 주셨다.”

당시 막 대표팀에 선발돼 스켈리턴 걸음마 떼기에 바빴던 윤성빈은 그런 고민을 할 수준도 아니었다. 윤성빈은 “위기라는 걸 느낄 시간도 없었다. 스켈리턴을 계속하면 내 미래가 어떨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나란히 소치 올림픽에 나섰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원윤종은 “그래도 10위권까지는 욕심을 냈었는데 18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을 땐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구나’ 싶었다”고 했다. 서영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치에 다녀온 뒤 왼발목 안쪽에 오륜기 문신을 새겼다. “기념으로라도 남겨 놓으려고 했는데 막상 폐막하고 보니 올림픽이 엄청나게 대단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출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됐다.”

소치에서 가장 부러웠던 선수는 단연 금메달리스트였다.

원윤종은 “2관왕 한 러시아 선수(알렉산드르 줍코프)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환호하는 걸 밑에서 보고 있는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안 될 것도 없지라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남부럽지 않게 격정적으로 환호하더라”라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머릿속에 남아 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나온다”며 웃었다.

소치에서 16위를 했던 윤성빈도 “러시아 선수(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가 금메달 따고 관중석으로 들어가는데 정말 부러웠다”라며 “나도 이제 메달에 도전하는 만큼 평창에서 많은 분들이 소리 질러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문 선수가 아닌 ‘원석’이었던 이들이 ‘보석’으로 빛날 수 있었던 건 이 감독의 열정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루지 대표로 나가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뒤 서른이 넘어 밴쿠버 올림픽에 다시 도전했던 이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뽑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면 분명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아직 선수들의 운동능력이나 장비가 모두 최고 단계에 이른 게 아니기 때문에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올 시즌 한국 썰매의 기적을 이루고 돌아온 3인방. 왼쪽부터 스켈리턴 윤성빈(세계 랭킹 2위)과 봅슬레이 서영우, 원윤종(세계 랭킹 1위). 귀국 직후 쉴 틈도 없이 강원 평창으로 이동한 이들은 “아직 시차적응이 안 돼 새벽마다 깬다”면서도 “하루빨리 평창 트랙에서 직접 주행을 해보고 싶다”며 완공될 트랙에 대한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올 시즌 한국 썰매의 기적을 이루고 돌아온 3인방. 왼쪽부터 스켈리턴 윤성빈(세계 랭킹 2위)과 봅슬레이 서영우, 원윤종(세계 랭킹 1위). 귀국 직후 쉴 틈도 없이 강원 평창으로 이동한 이들은 “아직 시차적응이 안 돼 새벽마다 깬다”면서도 “하루빨리 평창 트랙에서 직접 주행을 해보고 싶다”며 완공될 트랙에 대한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3인방이지만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금메달을 딴 8차 월드컵 직전 원윤종은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반면 서영우는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잘 안 된다”며 “그 대신 ‘악!’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는 양반”이라며 “외국 선수 중에는 욕을 하거나 발로 주변을 막 차는 선수들도 있다. 러시아 선수들은 심지어 암모니아를 들고 다니면서 냄새를 맡기도 한다”고 말했다.

“봅슬레이 경기장에 있다가 스켈리턴 경기장에 오면 정말 조용하다”는 윤성빈은 “EDM, 헤비메탈같이 ‘확실히 시끄러운’ 노래가 좋다”고 했다. 국내 가수 중엔 f(x)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소치에서 신발 뒤축에 ‘보고 있나’라고 적어 화제가 됐던 윤성빈은 평창 때도 준비한 문구가 있느냐고 물으니 “그때(소치)는 가족들이랑 친구들 보라고 적었는데 이번엔 정말 메달 따야 하니까 진지하게 적겠다”고 했다. 그는 새 헬멧에 입힐 디자인도 고민 중이다. 주변에서 아이언맨이 미국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해서 좀 더 한국 느낌이 나는 디자인을 물색 중이란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의 요즘 관심사는 농구다. 전날 농구장 취재를 다녀왔다는 기자에게 윤성빈은 “제가 챔피언전 올라갈 팀 알려드릴까요? KCC랑 오리온이에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원윤종이 “모비스가 떨어진다고? 수년간 우승한 팀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기 어려워”라고 했다. 하지만 윤성빈은 곧바로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동부가 우승했겠지”라고 되받아쳤다.

귀국 후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평창 슬라이딩센터로 이동해 호몰로게이션(Homologation·올림픽 참가 후보국의 트랙 확인 절차)에 참가 중인 선수들은 4월부터는 본격적인 체력훈련에 돌입해 ‘더 나은’ 다음 시즌을 위해 땀을 흘릴 예정이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봅슬레이#스켈리턴#윤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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