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지만… “이젠 꽃보다 봅슬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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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보고 싶어서” “대학 진학 위해”
얼떨결에 女봅슬레이 국가대표선수 된 김선옥-신미화

폭염 잊고 땀방울 여자 봅슬레이 대표팀 1세대인 김선옥(앞)과 신미화가 8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에서 밝게 웃으며 훈련하고 있다. 한국 여자 썰매 종목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들은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연일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평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폭염 잊고 땀방울 여자 봅슬레이 대표팀 1세대인 김선옥(앞)과 신미화가 8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에서 밝게 웃으며 훈련하고 있다. 한국 여자 썰매 종목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들은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연일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평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시작은 단순했다.

김선옥(33)의 이야기다. “대학원 선배의 권유로 선발전에 참여했어요. 아이도 있는 아줌마지만 운동을 해서 자신은 있었어요. 공부를 더할까도 싶었지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았죠. 미국이나 유럽에서 훈련과 경기를 하잖아요.”

다음은 신미화(19·삼육대) 얘기. “고등학교 때 육상 창던지기 선수였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놀이기구 타는 거 좋아하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선발전에 지원해보라고 하셨어요. 대표선수가 돼 메달 따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죠.”

김선옥과 신미화는 대한민국에 단 두 명밖에 없는 봅슬레이 여자 국가대표선수다. 김선옥은 2011년, 신미화는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선옥은 2008년까지 육상 단거리 선수였다. 전국체육대회에서 18개의 금메달을 땄다. 육상선수로 홍콩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다녔지만 유럽과 북미는 가본 적이 없었다. 대표가 된 뒤 부푼 기대를 안고 지난해 1월 캐나다 캘거리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기쁨이 후회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봅슬레이를 타고 트랙을 내려갔을 때 김선옥은 먹은 것을 모두 토했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고생했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도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김선옥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이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둔다면 나중에 부끄러울 것 같아 쌌던 짐을 풀었다”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미도 붙었다. 연습 경기에서 일본을 꺾는 등 실력도 점점 늘었다. 김선옥은 “그래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선옥보다 열네 살 어린 신미화는 대학 신입생이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미팅도 하고 싶지만 모두 미뤘다. 학교를 한 달도 채 다니지 못해 성적표는 ‘F’가 수두룩하다. 신미화는 “합숙훈련 탓에 학교를 가끔 가다 보니 과 선배들의 얼굴을 몰라 인사도 못했다. 선배들에게 어느새 ‘건방진 후배’로 찍혔다”고 말했다.

체중을 늘리기 위해 많이 먹는 것도 고역이다. 약 1600m의 트랙을 최고 130km의 속도로 내려오는 봅슬레이는 무거울수록 가속도가 붙어 유리하다. 국내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 비해 몸무게가 가볍다. 이기기 위해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보통 한 끼에 ‘고봉밥’ 두 공기는 기본이다. 취침 전 치킨, 라면 등 야식도 필수다. 신미화는 “대표팀에 들어오고 나서 체중이 7kg 늘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5kg은 더 늘려야 한다. 예쁜 옷도 입고 싶은 꽃다운 대학생인데…”라면서도 얼굴엔 웃음 가득이다.

시작의 이유는 미미했지만 둘은 이제 한국 봅슬레이 발전을 이끌 사명감에 불타 있다. 김선옥과 신미화는 둘이서 조를 이뤄 나간 지난 시즌 8개의 아메리카컵 대회에서 6위에 네 번 올랐다.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만큼만 한다면 올림픽에 나갈 확률은 아주 높다. 봅슬레이와 스켈리턴, 루지 등 여자 썰매 종목이 올림픽에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둘이 출전권을 딴다면 새 역사를 쓰게 된다.

“비인기 종목은 투자를 먼저 받아 실력을 키우는 환경이 아니다. 성적이 좋고 잘해야만 투자를 받는다. 우리가 빨리 실력을 키워 성적을 내야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것이다. 우리 둘은 이제 이런 사명감으로 땀을 흘린다. 소치는 물론 2018년 평창까지 꼭 가겠다.”(김선옥)

평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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