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후려치기 명수 해태 “광주랑 서울이랑 물가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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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5일 07시 00분


아날로그 시대의 연봉협상

21세기에 가장 달라진 스토브리그의 풍경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각 구단과 선수들은 조용히 연봉협상을 마친다.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가능한한 계약 사실을 쉬쉬한다. 소수에게만 알려지기를 바란다. 구단도 협상과 관련해 구구절절 얘기를 하지 않는다. 몇몇 특별한 케이스나 화제에 오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제 스토브리그에서 연봉협상이나 계약 관련 뉴스는 신경을 써야만 찾아볼 수 있다.

팍팍한 구단 재정에 협상의 기술 총동원
술로 선수들 마음 달랜후 취중 사인 받기
선동열·이종범에 보너스 대신 음반 주선
고스톱 치다 ‘쓰리고’ 도취돼 연봉도 OK!
스타 선수 가불 요청했다 재떨이 맞을 뻔
“새 구질 개발했으니 인상해달라” 억지도


○잔칫집처럼 시끌벅적했던 20세기 연봉협상

프로야구 초창기 연봉협상은 많은 얘기를 만들었다. 스포츠신문은 12월부터 1월까지 선수와 구단이 만드는 연봉 계약 관련 소식을 보도하느라 바빴다. 당시 선수들은 25% 상한선이라는 악법에 불만이 많았다. 선수들이 외치는 주된 내용도 “이만큼 안 주면 야구 못 하겠다”였다. 구단과 감정싸움이 치열했다. 스타가 많았던 해태가 중요한 뉴스 메이커였다. 당시 해태는 빡빡한 구단 사정 때문에 선수들이 원하는 만큼 줄 형편이 못 됐다. 그래서 ‘광주물가’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음주협상’, ‘주판알 계약’에다 상상 못할 옵션도 많았다. CF 출연과 음반 발매도 있었다.

야구선수에게 진짜 중요한 시즌은 그라운드에서 보내는 페넌트레이스가 아니다. 겨울에 구단과 벌이는 연봉협상이 진정한 시즌이다. 물론 요즘 선수들에게도 구단이 제시한 조건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1991년 연봉부터 25% 상한선이 없어지고, 이후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생겨 선수들의 몸값은 놀라울 정도로 올랐지만, 그래도 구단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고픈 게 선수들의 마음이다. 구단과 선수들의 연봉과 관련된 감정싸움은 여전히 벌어진다. 단지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선수도, 구단도 조용한 처리를 원한다.

○아날로그 시대 기억에 남는 연봉협상

해태 김정수. 올해 KIA 2군 투수코치로 새롭게 출발하는 그는 올드 팬들의 머릿속에 ‘반항아 까치’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마운드에서 불같은 강속구를 좌충우돌하며 던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봉협상에서도 구단에 ‘돌직구’를 자주 던졌다. 협상이 길어지면 유니폼을 구단에 반납하고 버텼다. 이런 선수들을 다독이기 위해 사용된 구단의 무기가 바로 술. 해태와 LG는 한동안 연봉협상 때면 술이 기본으로 동원됐다. 주로 스타급의 경우였다. 저녁을 함께 하면서 술로 선수들의 마음을 달래고 얼러서 도장을 받아냈다. 해태 선동열처럼 엄청난 주량의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선 협상 담당자도 상상 이상의 술을 마셔야 했다. 이른바 ‘음주협상’이다.

‘광주물가’, ‘해태물가’는 이때 탄생한 조어였다. 광주의 아파트 값이나 생활비가 서울이나 다른 도시보다 적기 때문에 해태의 연봉도 적다는 논리였다. 어느 단장은 인상률을 결정하면서 우수리 돈을 떼고 줬다. 전자계산기로 두드리면 일원 단위까지 선수들이 알 수 있었지만, 주판으로 계산해서 선수들에게는 만원 단위 이하의 돈은 주지 않고 끝냈다. 구단의 이삭줍기였다.

프로야구 최초로 억 단위 연봉시대를 연 선동열에게는 그것도 모자라 구단이 CF 출연을 주선해줬고, 이종범과 함께 음반도 만들어줬다. 음반을 성공시켜 그 돈을 보너스로 가져가라는 얘기였지만, 결과는 뻔했다.

가을이면 항상 배가 고팠던 호랑이들. 가난한 구단에서 많은 연봉을 주지 못하자, 해태 선수들은 기를 쓰고 한국시리즈에서 이겼다. 
1987년 삼성을 4승무패로 누르고 연속우승을 달성한 해태 선수들이 김응룡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스포츠동아DB
가을이면 항상 배가 고팠던 호랑이들. 가난한 구단에서 많은 연봉을 주지 못하자, 해태 선수들은 기를 쓰고 한국시리즈에서 이겼다. 1987년 삼성을 4승무패로 누르고 연속우승을 달성한 해태 선수들이 김응룡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스포츠동아DB


○기상천외한 연봉협상의 주인공들

지방구단 A선수의 이야기. 지금은 모 구단 수석코치다. 현역시절 겨울에 심심풀이로 지인들과 고스톱을 쳤다. 문제는 그 장소가 경찰서였다는 것.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다. 그해 연봉협상에서 구단의 담당자가 그 얘기를 새삼 꺼냈다. A선수는 화가 나서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연봉하고 고스톱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스톱을 유난히 좋아했던 B선수. 협상 담당자도 고스톱이라고 하면 자랑할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이 협상을 이어가다 함께 앉아서 화투를 들었다. 늦은 밤이었다. 그 선수에게 ‘쓰리 고’ 찬스가 왔다. 이 때 협상 담당자가 말했다. “B야, 도장 좀 찍어주라.” 결국 그 선수는 화투를 들고 OK를 외쳤다.

다음은 협상에서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던 재떨이와 관련된 스토리. 지방구단의 스타급 선수. 지금은 코치다. 현역시절 구단과 연봉협상을 하면서 가불을 요청했다. 집안 일 때문에 큰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평소 그 선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구단 담당자는 재떨이로 응징했다. 물론 선수를 향해 던지지는 않았다. 단지 위협만 했다. 야구선수 출신의 어느 지방구단의 단장은 선수와 감정싸움이 심해지면 자주 재떨이를 들었다.

이처럼 선수와 구단이 화끈하게 붙으면 도장도 빨리 받을 수 있다. 가장 구단을 애먹이는 스타일은 자신의 요구액을 밝히지 않거나, 능글능글하게 나오는 선수다. 이런 선수와 상대하면 울화병이 절로 생긴다.

초창기 C선수. 시즌 성적은 별로였다. 인상 대상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구단과의 면담에서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새로운 구질을 개발했으니 연봉을 대폭 올려달라”는 얘기에 협상 담당자는 할 말을 잃었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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