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물’만 먹었는데, 내년부턴 물불 안 가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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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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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cm프로농구 최단신 모비스 원지승

255mm 발은 작아도 꿈은 무한대 “꿈은 나도 문태영!” 프로농구 최단신(166.5cm)인 모비스의 원지승이 26일 경기 용인시 선수단 숙소에서 팀의 간판스타인 문태영(194cm)의 신발을 자신의 발에 맞대 보고 있다. ‘왕발’ 문태영의 발 크기는 340mm, 원지승의 발은 255mm다. 용인=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255mm 발은 작아도 꿈은 무한대 “꿈은 나도 문태영!” 프로농구 최단신(166.5cm)인 모비스의 원지승이 26일 경기 용인시 선수단 숙소에서 팀의 간판스타인 문태영(194cm)의 신발을 자신의 발에 맞대 보고 있다. ‘왕발’ 문태영의 발 크기는 340mm, 원지승의 발은 255mm다. 용인=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뭘 또 물어보겠다는 건지….’ 26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모비스 선수단 숙소에서 만난 원지승(23)은 다소 뚱한 얼굴이었다. 할 말도 없는데 뭔 인터뷰를 하겠다고 기자가 또 찾아왔나 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봤던 2월에 비해 생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원지승은 1월 열린 한국농구연맹(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군 전체 1순위로 모비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 입성의 꿈을 이뤘다. 1군 선수로 뽑힌 건 아니었다. 하지만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최단신 선수가 탄생했다며 여기저기서 관심이 쏠렸다. 원지승의 키는 같은 연령대 남성의 평균 키(174cm)에도 한참 못 미치는 166.5cm다. 선수 시절 가드로 이름을 날린 강동희 동부 감독이 “모비스가 안 뽑았으면 내가 뽑았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원지승은 단신이지만 가드로서의 자질은 웬만큼 인정받는 선수였다. 원지승의 경기를 직접 본 석주일 휘문고 코치는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한다. 패스 능력만 놓고 보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그를 1군으로 올렸다. 다시 한 번 관심이 집중됐다. “1차 목표였던 프로 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2차 목표로 삼은 1군에도 진입했다. 이제 뭔가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뒤로 올해가 가장 바닥이다. 최악인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만 하면 다 잘될 줄 알았다.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걸로 믿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0월 14일 KT와의 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치렀다. 이미 승부가 기운 경기 막판에 들어가 딱 1분 15초를 뛰었다. 득점도 어시스트도 없이 패스 실책 1개만 하고 끝났다. “패스 미스(실수)만 하지 말라”면서 코트 안으로 등을 떠밀던 감독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1분 15초를 어떻게 뛰다 나왔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패스 미스를 한 것만 생각난다. 긴장한 건 아닌데 아무 생각 없이 허둥대다 나온 것 같다.” 그는 데뷔전 당시를 떠올리면서 허탈해했다. 10월 말 훈련 도중 허리 부상이 도졌다. 그는 다시 2군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키만 문제가 아니었다. 체력과 힘에서 따라가지를 못했다.” 그는 “프로는 확실히 다르더라. 높은 벽 같은 게 버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대학 때도 키 큰 선수들은 많았다. 그래도 붙어 볼 만했다. 비록 대학 2부 리그에서 뛰었지만 생각대로 농구가 잘됐고 우승도 몇 번 해봤다. “프로에 온 뒤로 첫 연습경기를 인삼공사와 하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몸싸움에서 상대가 안 됐다. 붙기만 하면 튕겨 나왔다. 버겁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대학 때보다 훈련량도 많아 초반에는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프로의 살벌함을 절감한 한 해였다. 생각대로 농구가 안 돼 정신적으로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고등학교 때 농구 캠프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는 같은 팀의 동갑내기 신인 김시래는 첫해부터 주전을 꿰찼다. “시래를 보면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배가 아플 때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실력 차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웃음)” 2군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로 뽑힌 같은 팀의 고졸 신인 양준영도 벌써 5경기에 출전했다.

“농구만 놓고 보면 올해는 정말 죽을 쑨 한 해다. 요새는 웃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구가 엄청 잘되는 꿈을 자주 꾼다. 꿈에서는 패스며 슛이며 안 되는 게 없다.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 실제로도 그래야 되는데….” 농구를 시작한 뒤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는 그에게 새해 소망을 물어봤다. “1년 계약을 했다. 멀리 보는 거창한 희망 같은 건 무리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잡생각을 버리고 다시 집중해야 한다. 컨디션을 끌어올려 슬럼프를 털어내는 게 급선무다. 꿈에서처럼 농구가 잘되면 더 좋겠고….”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만큼 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표정이었다.

용인=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프로농구#원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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