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천국을 본 ‘자전거 집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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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37개국 떠돈 세르비아인 밀로사브 씨, 4대강 길 6번 완주… “10번 채우겠다”

“한국엔 사이클러의 천국(cycler's heaven)이 있대.”

세르비아인 그루유치치 밀로사브 씨(57)는 10월 19일 한 독일인으로부터 솔깃한 말을 들었다. 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중국으로 가던 뱃길에서였다. 그는 배가 부산에 잠시 정박했을 때 급히 짐을 챙겨 내렸다. 짐이래봤자 자전거 한 대와 보따리 두 개가 전부였다. 그렇게 처음 4대강 자전거길을 만났다.

○ 4대강 길 632km를 6번 달린 ‘자전거광’

밀로사브 씨는 자칭 ‘자전거에 미친 남자’다. 1983년부터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37개국을 자전거로 떠돌았다. 올해도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 4000km를 달렸다. 일주일에 1000km씩 달리는 강행군이었다. 그가 1988년부터 5번에 걸쳐 일본을 자전거로 달린 거리만 2만4000km. 당초 그의 목표는 일본에서 3만 km를 채우는 거였다.

그러나 우연히 한국 땅을 밟은 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바로 ‘4대강 자전거길 10회 완주’였다. 10월 19일부터 12월 11일까지 부산 낙동강하굿둑에서 인천 서해갑문에 이르는 632km에 이르는 4대강 자전거길을 6번이나 완주했다. 자전거로 달린 거리만 4000여 km. 그는 ‘4대강 자전거길 완주 인증여권’ 6개를 훈장처럼 가슴에 품고 다닌다. “이렇게 훌륭한 자전거길은 평생 처음이다. 화장실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아마데우스’가 흘러나와 10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밀로사브 씨의 한국 여정은 험난했다. 변변한 벌이가 없어 경비를 최대한 아껴야 했다. 잠은 텐트에서 잤다. 초겨울 강바람이 살을 파고들 때는 길에서 주운 신문지를 끌어안았다. 식사는 휴대용 버너로 끓여 먹는 스파게티와 밥이 전부였다. 그래도 인심 좋은 한국인들은 ‘푸른 눈의 노숙인’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충주에서 사과를 파는 할머니가 영어로 ‘인조이(즐기라)!’라며 사과 2개를 주더라. 부산에선 한 가족이 아침에 따뜻한 커피와 쿠키를 건넨 적도 있다”라며 웃었다.

그루유치치 밀로사브 씨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인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카페 앞에서 오른손에 태극기를 든 채 자신의 자전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자전거 뒤에 텐트와 옷가지, 음식 등을 실은 채 4대강 자전거길을 여섯 번이나 달렸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와 장갑은 4대강 자전거길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위 사진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 여주 이포보에서 강천보로 향하는 자전거길을 달리는 국내 사이클 애호가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그루유치치 밀로사브 씨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인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카페 앞에서 오른손에 태극기를 든 채 자신의 자전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자전거 뒤에 텐트와 옷가지, 음식 등을 실은 채 4대강 자전거길을 여섯 번이나 달렸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와 장갑은 4대강 자전거길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위 사진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 여주 이포보에서 강천보로 향하는 자전거길을 달리는 국내 사이클 애호가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평생을 자전거와 함께 떠돈 ‘집시’

밀로사브 씨는 1983년 처음 자전거를 탔다. 평소 약했던 무릎 치료에 자전거가 효과적이라는 말을 듣고서였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을 떠돌았다. 1988년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자전거의 천국’이라는 중국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중국에서 스페인 레스토랑 요리사로 일했다. 돈이 모이면 자전거와 함께 어디론가 떠났다.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등 가는 곳마다 주업인 요리사뿐 아니라 농사일, 페인트칠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경비를 충당했다. 그는 그렇게 ‘집시’가 돼갔다.

세계를 떠돌던 2000년 말,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림프샘암에 걸렸다는 거였다. 의사는 “오른팔을 절단해야 한다.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밀로사브 씨는 죽음만은 고향에서 맞고 싶었다. 자신이 소중하게 모았던 책과 음반을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분신 같은 자전거와 카메라, 로버트 스콧의 남극탐험기와 구스타프 말러의 음반만은 차마 내주지 못했다. 속세에 대한 작은 미련이었다.

○ “남은 건 보너스 인생!”

절망에 빠진 2001년 초, 그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다른 의사가 “방사선 치료를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3년의 치료 끝에 림프샘암을 이겨냈다. 그는 요즘의 삶을 ‘보너스 라이프’라 부른다. “1980, 90년대엔 모텔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즐거움은 추운 텐트에서 자면서 커피 한잔 끓여 마시는 지금이 더 크다.”

그는 15일 친구가 농장을 운영하는 크로아티아로 떠났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내년 3월에 한국을 다시 찾아 ‘못다 한 4번의 4대강 질주’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여정을 마치면 4대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동안 매일 써온 일기에 자신이 찍은 흑백사진을 담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한국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출판도 고려 중이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들고 간 짐은 자전거와 보따리 두 개가 전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같다. 하지만 마음만은 ‘한국’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사이클러의 천국’인 한국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밀로사브 씨#4대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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