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허 “생생하네요, 골프백 메고 지하철 30개역 오가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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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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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신인왕 유력 존 허의 인생역전

3년 전 지하철을 타고 연습장을 다닐 때나 ‘골프 부호’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한 요즘이나 재미교포 존 허의 마음가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존 허는 “필드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내겐 기쁨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적을 떠나 정확하게 한 샷을 더 치는 데만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3년 전 지하철을 타고 연습장을 다닐 때나 ‘골프 부호’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한 요즘이나 재미교포 존 허의 마음가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존 허는 “필드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내겐 기쁨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적을 떠나 정확하게 한 샷을 더 치는 데만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집이 있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근처의 연습장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3번 환승하며 30개 역을 지나야 했다. 무거운 캐디백을 메고 지하철을 탄 그를 힐끔힐끔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골프 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현재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뛰는 어엿한 프로 선수다. 우승도 한 차례 했고 상금도 30억 원가량 벌었다.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치는 30명만 나갈 수 있는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도 한국(계)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했다. 일생에 한 번뿐인 신인왕도 유력하다. ‘인생 역전’에 성공한 그의 이름은 재미교포 존 허(허찬수·22)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3개월 만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지내다 다시 미국으로 갔다.

○ 운이 좋았다

지난주 열린 신한동해오픈 출전차 한국을 찾은 그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선수”라고 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3년간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2008년 한국에 다시 오기 전 미국에서 그는 ‘펩시트와일라이트투어’라는 미니 투어에서 뛰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동네에서 골프깨나 친다는 사람들이 모여 돈 내고 돈 먹는” 투어다. 출전비는 125달러(약 13만 원), 우승을 하면 상금으로 500∼600달러(약 55만∼66만 원)를 가져갔다. 그는 이 투어에서 두 번에 한 번꼴로 우승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미국 프로무대보다 상대적으로 장벽이 낮은 한국 프로무대에서 일단 성공한 뒤 더 큰 무대로 나아갈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해 말 치른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외국인 퀄리파잉스쿨. 마지막 날 경기 중반까지 그는 탈락이 유력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마지막 6개 홀에서 버디 4개를 몰아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정확히 커트라인으로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다.

○ 또 운이 좋았다


2009년부터 한국 투어에서 뛰었지만 그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 장타를 날리는 것도 아니고 꽃미남도 아니었다. 그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열린 신한동해오픈이었다. 마지막 날 버디 행진을 이어가던 그는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17번홀까지 버디 5개를 기록하며 잘나가던 그는 마지막 홀에서 덜컥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그는 “뒷조에서 최경주 선배님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단독 선두였던 최경주가 13번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했고, 18번홀에서도 보기를 범했다. 존 허의 2타 차 우승이었다. 그는 “우상이던 최 선배님을 이긴 게 엄청난 자신감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 정말 운이 좋았다

이듬해 그는 모든 프로 골퍼의 꿈인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는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통한의 보기를 범하면서 2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PGA투어 출전권은 25위까지만 받게 돼 있었다.

허탈함에 빠져 멍하게 라커룸에 앉아 있을 때 또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앞선 순위의 선수 두 명이 다른 규정을 통해 출전권을 받으면서 그가 턱걸이로 PGA투어 출전권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올해 PGA투어 신인이 된 그는 2월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연장 8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에도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 운이 아니라 노력의 대가였다

그는 이렇듯 ‘한 끗’ 차이로 중대한 고비를 넘겨왔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릴 적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서 뛸 때, 그리고 다시 PGA에서 뛰는 요즘도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것을.

올해 그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88.3야드(112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페어웨이 안착률은 68.69%로 9위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드라이버를 정말 열심히 친다. 매일 6시간 정도 볼을 치는데 주로 드라이버 연습이다. 미국 골프장은 대개 러프가 길고 페어웨이가 좁아 정확한 티샷이 관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라이버가 워낙 정확하다 보니 버디 기회를 많이 잡는다.

어려운 집안 살림 덕에 혈혈단신 공을 쳤던 그는 올해 상금으로 최경주 양용은이 사는 미국 댈러스에 집을 구입했다. 또 골프용품 업체 핑을 메인 스폰서로 맞아들였다. 미국에서 한인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는 BBCN은행도 그를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하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연습장을 다니던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필드에서 한 샷을 더 정확하게 칠 수 있느냐뿐”이라고 했다. 그에게 따랐던 행운은 이처럼 그가 한 샷의 소중함을 알고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인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
#PGA#존 허#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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