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세계’ 美프로야구 진출했던 한국 마이너리거들 격정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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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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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알아달라” 절규했지만…

박찬호를 기점으로 모두 55명의 야구 유망주들이 꿈의 무대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최희섭, 서재응, 김선우 정도만이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입지를 다졌을 뿐 대부분은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미국에 진출한 선수 중 많은 선수가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수 개인의 실력과 노력 차이도 있지만 치열한 경쟁 구도, 야구 문화 차이로 목표와 자존심이 흔들렸다. 누구 하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외로움에 시달렸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던 선수들이 겪은 심적 충격과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 ‘내가 최고’라는 생각 깨지면서 정신적 혼란

유망주들이 미국에 건너가자마자 크게 혼란을 겪은 것은 치열한 팀내 경쟁 구도를 접하면서다. 그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유연성과 파워, 스피드가 뛰어난 미국, 중남미 출신 경쟁자들이 즐비하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어린 선수들에겐 견디기 힘든 충격이다.

2001년 95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에 입단해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안병학은 “거포이면서 도루도 한 시즌 80개씩 하고, 어깨도 강견인 중남미의 야수 유망주가 한둘이 아니다. 미국 유망주 투수들은 가뿐히 시속 150km 이상을 찍는다. 소위 발에 차이는 게 유망주”라며 “미국행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최고였는데, 그 생각이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야구장 밖에서도 거친 도전과 맞닥뜨린다. 일반적으로 한국 유망주들에 대한 미국 구단의 대우는 중남미 선수들보다 후하다. 평균 계약금은 30만∼50만 달러, 특급 한국 유망주의 경우 100만 달러 이상을 준다.

반대로 중남미 선수들의 몸값은 주로 수백, 수천 달러에서 형성된다. 안병학은 “중남미 선수들은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지는데 돈을 더 받는다며 한국 선수들의 자존심을 긁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그때마다 정말 ‘내가 미국에 왜 왔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든다”고 밝혔다.

에이전트의 달라진 태도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2008년 미국에 진출했다 국내로 들어온 A 씨는 “에이전트가 미국에 들어가기 전날까지 ‘팀에선 너보다 잘하는 선수가 없으며 경기도 많이 뛰게 해주고 잘 보살펴주겠다’고 하더니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바꾸더라”면서 “난생처음 사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A 씨는 “보통 에이전트와 2, 3년 계약을 하는데, 미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에이전트가 계약 기간 동안 관심을 가져주고, 어려우면 팀 이적도 도와줘야 하지만 전혀 의지가 없다”고 했다. 계약 위반으로 고소를 하고 싶어도 미국에서 소장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 소통 부재 “피드백이 없다”

소통 장벽에 번번이 부딪히는 것도 스트레스다. 언어를 떠나 야구 문화 차이 때문이다. 기량 향상의 발판을 마련해도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코칭스태프의 훈련 방식에 적응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은 자율적 훈련이 보편화돼 있는데, 훈련 시작 전에 하루 계획만 알려준다. 훈련도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가뜩이나 외국 선수들과 치열하게 실력 경쟁을 펼쳐야 하는 한국 선수로선 절대적으로 훈련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배명고를 졸업하고 2008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한 강인균은 “개인 운동을 하고 싶어도 보통 숙소에서 연습장까진 차로 30분,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린다. 코치에게 개인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집에 가야 된다’고 거절하고, 연습장 관계자도 ‘퇴근해야 된다’고 연습장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현지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기량 평가 및 지도와 처우에 대한 피드백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진출 선수는 “정말 목숨 걸고 운동하는데 코칭스태프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건물에서 뛰어내려서라도 나도 야구 선수라는 걸 알리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광주진흥고 시절 한 경기 국내 최다 기록인 23개의 삼진을 잡은 초특급 투수로 2006년 계약금 100만 달러를 받고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정영일도 “(미국) 코치들은 잘해도 아무 말도 없고, 못해도 별 관심이 없다. 특히 못할 땐 도움을 받을 길도 없어 슬럼프 기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5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정영일은 “나중에는 코치들 눈치 보느라, 그들이 쓰는 나에 대한 보고서 내용 신경 쓰느라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날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찬호를 필두로 미국에 진출한 선수는 53명. 2001년 이후엔 류제국(전 클리블랜드)만이 메이저리그를 밟았다. 미국 진출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2006∼2009년 사이 미국으로 건너간 유망주들 일부는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고, 남은 선수들도 여전히 루키리그와 싱글A를 전전하며 기약 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야구 유망주들에게 있어서 무대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미국 무대는 냉정하다. 강인균은 “미국에서 가장 보기 싫었던 게 글러브와 공”이라고 했다. 홀로서기를 반복해야 하는 고통이 쉽게 견딜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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