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울분·분노…법정 맞먹는 ‘테이블 연봉 싸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1월 17일 07시 00분


빅터 박이 전하는 ‘ML 연봉조정위원회’의 모든 것
선수가치 정당하게 평가받는 자리
구단 vs 에이전트 T자 테이블 대립
두툼한 자료 맞교환후 치열한 반박
정중한 결과 통보…객관성 느껴져

각종 자료가 빼꼭히 담긴 두툼한 서류 파일을 주고받는 양측. 그 모습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조인 조정관 3명. 그리고 수 시간씩 이어지는 날선 공방. 격하게 쏟아지는 분노와 고성. 울분을 토해내며 초초하게 판결을 기다리는 주인공.

엄숙한 법정의 모습 같다. 그러나 이곳은 클리블랜드 추신수가 곧 참석해야 할지도 모르는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다.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신청제도는 1972년 도입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2월 김선우가 한국인 최초로 연봉조정(패배)을 받았지만 어떤 분위기속에서 어떤 절차로 조정위원회가 열리는지 아직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스포츠동아는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빅터 박을 통해 추신수가 자신의 정당한 가치를 주장할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가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절차로 열리는지 소개한다.

○법정싸움 만큼 치열한 연봉싸움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는 3명의 조정관으로 구성된다. 모두 법조인으로 구단과 선수노조의 동의를 통해 임명된다. 2월 초 추신수에 대한 조정위원회가 열린다면 조정관들은 이에 앞서 정해진 날짜까지 상대방에게 원하는 액수를 통보하도록 한다. 이 때부터 구단과 선수측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빅터 박은 “메이저리그에는 구단을 위해 일하는 연봉조정 전문회사가 따로 있을 정도다. 선수 에이전트도 한 시즌 동안 그 선수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 언론의 평가까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수집하며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조정위원회는 주로 ‘T’자 테이블에서 열린다. 조정관 3명이 상단에 앉고, 선수와 구단이 마주보고 앉아 공방을 벌인다. 구단은 단장 포함 고문 변호사, 실무자 등 5명 내외가 참석한다. 선수측도 선수 본인, 에이전트와 함께 변호사, 해당 실무자 등 5명 정도로 진용을 갖춘다.

○선수-단장 마주앉아 고성 지르는 조정 청문회

선수와 단장이 조정위원회에 마주 앉아 서로의 연봉을 주장하는 모습은 국내와는 많이 다르고 익숙하지 않다. 국내 구단의 경우 단장이 연봉협상에 직접 나서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사이에서 고성이 터지기도 한다. 빅터 박은 “에이전트가 있기 때문에 선수가 말을 직접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종종 구단이 인신공격 카드를 꺼낼 때가 있다. 팀워크에 해를 끼쳤다거나 개인적인 일을 거론하기도 하는 등 야구 외적인 부분을 언급한다”며 “이럴 경우 선수가 직접 반박한다. 매우 흥분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연봉조정을 위한 청문회 진행 순서는 자료교환,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진다. 조정위원회를 시작하기 전 두툼한 파일에 준비한 자료를 먼저 교환하는데 그 즉시 실무직원이 검토하며 조목조목 반박할 내용을 찾는다. 먼저 30분에서 1시간씩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주장하는 연봉의 근거를 설명한 뒤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상대 자료의 허점을 파고드는 공방을 시작한다.

○정중한 결과 통보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은 구단과 선수 에이전트간의 자존심 대결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안정적으로 3년을 뛰어야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갖는다. ‘메이저리그 3년’을 위해 추신수는 10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의 결과는 60% 이상 구단의 승리다. 특히 조정위원회의 임무는 ‘조정’이 아니라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구단측 주장으로 결정될 경우 선수측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조정위원회의 결과 통보는 매우 정중하다.

빅터 박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과 통보다. 보통 청문회 하루 뒤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나 ‘구단이 이겼다’ 혹은 ‘선수가 이겼다’가 아니다. ‘○○○ 선수의 연봉은 ○○○만 달러입니다’라는 말로 구단 혹은 선수가 주장한 어느 한 쪽의 연봉으로 결정됐다고 알린다. 실무자 입장에서 객관성이 느껴지기도 했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빅터 박은 누구?

빅터 박(36·한국명 박승현) 씨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추신수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운영하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재무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01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당시 필라델피아 소속이었던 트래비스 리의 연봉조정위원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후 수차례 실무자로 연봉조정을 준비하고 위원회에 참석했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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