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한국형 감독’ 달라져야 한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2월 1일 07시 00분


연말이 되면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프로축구선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선수들과 면담을 하면서 요즘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한국형 감독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말하는 한국형 감독의 이미지는 온통 부정적이다.

대화 보다는 강압적이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때로는 인격에 상처를 주는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경기에 지면 본인의 판단실수를 인정하기 보단 특정선수를 거명하며 선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선수들이 많이 나약해졌다는 생각 이전에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 역시 자연스런 변화라는 점을 우리 지도자들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지도자란 결국 선수들로 하여금 그들의 잠재력을 최고조로 발휘토록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기현 이영표 등 오랫동안 유럽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은 감독들의 역량 차이가 ‘전술적 지식’이 아니라 ‘동기부여 능력’에서 결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감독이 주입하는 전술의 좋고 나쁨 보다는 선수들이 어떤 자세로 경기에 나서는가가 성적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히딩크 감독에 대해 이영표는 “경기 전날 미팅을 하고 나면 모두가 내일 경기에 대해 전의를 활활 불태우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팀이 죽느냐, 사느냐는 벤치멤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는 히딩크의 지도자론도 떠올렸다. 시각장애아들의 특수교사 출신인 히딩크의 탁월한 심리전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수들은 경기 전 팀 분위기를 보면 경기결과를 거의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자”는 분위기라면 패배는 떠올리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는 ‘초일류 감독’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분위기라면 그 감독은 ‘일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형 지도자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나아가 “내가 잘하면 감독만 좋아질테니 열심히 뛸 마음이 나지 않는다”는 선수도 꽤 많다고 한다. 이런 팀의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감독들 역시 이런 선수들의 심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을 따름이다. 거꾸로 선수들의 생각이 돼먹지 못해 충격요법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도 꽤 많은 편이다. 경기장 벤치에서도 말이 많아지고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기계처럼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들도 없지 않다. 선수들이 말하는 ‘한국형 감독’의 전형이다. 모두 선수들과 멀어지고 팀 분위기를 망치는 요인들이다.

K리그도 40대 초중반의 젊은 감독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선수들이 푸념조로 지칭하는 ‘한국형 감독’의 어두운 그늘을 밝은 이미지로 바꿔야할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 감독과 대화할 기회가 없어 자신의 플레이에 뭐가 잘못됐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은퇴했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 속에 묻혀야 한다.

그나마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제주 유나이티드를 ‘지지 않는 팀’으로 바꾼 박경훈 감독과 재정난 속에서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호령한 성남 신태용 감독의 경우 ‘소통의 리더십’이 얼마나 강한가를 입증한 좋은 본보기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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