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월드컵 16강 병역 특례'는 너무 경솔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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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1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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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김원일(24)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김원일(24)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김원일(24). 그는 올해 포항에 입단한 신인이지만 홈경기 때는 수백 명이 넘는 서포터스들의 열렬한 응원을 한 몸에 받는 지역구 스타다.

그가 새내기임에도 이렇게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대 출신이라는 배경 덕분이다. 포항은 해병대 훈련소가 있는 곳으로,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많게는 수천 명의 해병대 장병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이런 해병대 서포터스들이 축구 선수로는 드물게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한 선배 김원일을 집중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

김원일은 숭실대 2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당시에는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이었다고.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윤성효 당시 숭실대 감독(현 수원 삼성 감독)의 권유로 다시 축구화를 신었고, 공백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프로 무대에 서게 됐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권오준(30)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권오준(30)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권오준(30)도 해병대 출신. 해병 891기인 그는 제대 후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현재 삼성 투수진의 미들맨으로 자리를 굳혔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사상 첫 원정대회 16강 진출을 이룬 허정무(55)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도 해병대 출신이다. 당시에는 해병대에 축구팀이 있었기 때문에 허 감독은 기본 군사 훈련을 받은 뒤 해병대 축구 대표로 2년 여 동안 활약했다.

한국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차범근(57) SBS 해설위원은 공군 출신이며, 한국축구대표팀 조광래(56) 감독은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이들은 각 군 팀의 대표선수로서 복무 기간에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실업 팀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국방의 의무를 하면서 기량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를 받는다.

차범근 위원은 공군을 제대하고 25세의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10년간 활약했다.

허정무 감독도 해병대를 제대한 1980년 25세 때 네덜란드 프로축구에 진출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26세 때 입대했던 조광래 감독은 제대 후 국내 프로축구에서 33세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이에 비해 요즘 선수들, 특히 프로 선수들은 군 복무에 관해서는 극도로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입대를 피하려고 하고, "지금 프로무대를 떠나면 영영 선수 생활 못 한다"며 입대를 계속 늦추는 경우도 허다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입상해 병역 특례를 받거나, 상무 등에서 운동을 계속하면서 군복무를 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나온 현상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면에서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마자 축구협회 관계자가 "대표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신청하겠다"고 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경솔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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