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야구 롤러코스터] 2군 좌천땐 천리길 유배 넥센선수들 ‘강진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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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9일 07시 00분


“야구계 뒷담화…이제는 말해 볼래요”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2010 프로야구 시범경기도 상쾌하게 시작했어요. 롯데는 2연승, 한화는 2연패, 나머지는 사이좋게 1승1패씩. 하지만 ‘야구 몰라요’라는 명언이 있어요.

아, 명언은 아니라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시범경기 때 촌놈 마라톤하다 4월부터 고꾸라질 수도 있어요. 반대로 솜방망이 휘두르다 갑자기 ‘2010년의 김상현’ 될 수도 있어요.

심장 뛰는 야구팬들 따라 ‘롤러코스터 베이스볼’도 더 빨리 돌아요. 본격적인 곡예, 지금부터 시작이에요.○강진으로 유배 갈까 두려워요

넥센으로 간판 바뀐 히어로즈 선수들, 요즘 잠이 오지 않아요. 올해부터 2군은 전남 강진볼파크를 써요. 산 좋고 바다 좋고 공기 좋아요. 그런데 서울에서 천리길, 땅끝마을이에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갔던 곳이에요. 주위에는 산과 바다뿐. 눈 씻고 찾아봐도 개미 한 마리 없어요.

지난주 일이에요. 2군 선수들, 바뀐 유니폼 입고 단체사진 찍으러 서울 올라왔어요. 새벽 6시에 버스 타고 서울 도착했더니 11시 반. 사진 1시간 찍고 다시 버스 타고 내려갔어요. 왔다갔다 버스만 11시간 탔어요. 으아∼악이에요.

최고 피해자는 1·2군 오락가락하는 선수들이에요. 지방출신 저연봉 선수들, 안드로메다 관광 가는 기분이래요. 서울 전셋집 팔자니 1군 오면 잘 데가 없고, 놔두자니 관리비만 나가요. 할 수 없어요. 시범경기부터 감독 눈도장 받아야 해요. 다들 눈에 불을 켜요. 안구가 10cm는 튀어나온 것 같아요.

○LG 곤잘레스 오자마자 전통부터 배우냐?

LG에 새 외국인이 왔어요. ‘라따라따 아라따’ 에드가 곤잘레스예요. 여기저기 좋은 투수라고 소문났어요. LG 프런트도 ‘용병 잔혹사’를 끊어줄까 내심 기대해요. 기대가 넘쳐서 오바이트를 할 지경이에요.

마침 9일 문학 SK전에 나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 마이 갓! 가방에서 면도기 꺼내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베었어요. 한국 오자마자 피 봤어요. 이런 우라질네이션!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상황이에요. LG는 ‘희한한 부상’이 전통인가봐요.

작년 생각나요. 최원호가 광주 1박2일 경기를 하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계단을 잘못 밟았어요. 그러다 발목 접질렸어요. 바우어도 펑고 받다 손가락 부러졌어요. 그대로 가방 쌌어요.

최근에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최동수, 경기 전 양치질하다 치약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경기 못 나갔어요. 박용택, 신인 시절 세면대 잡고 팔굽혀펴기 하는데 세면대 무너져서 손가락 찢어졌어요. 차명석 코치, 선수 때 비 오는 날 슬리퍼 신고 슈퍼에 라면 사러가다 미끄러졌어요.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다친 선수들, 일렬로 세우면 운동장 꽉 차요.

그래도 천만다행이에요. 곤잘레스 부상, 심각하지는 않아요. 액땜한 걸로 받아들이면 속 편해요. 시즌 중에 안 다친 게 어디냐고 위안 삼아요.

○종범신 말씀에 ‘구라’는 없다?

SK 세키가와 고이치 타격코치는 주니치 출신이에요. 삼성 선동열 감독, KIA 이종범과 한솥밥 먹었어요. 주니치 시절, 한 살 아래인 이종범과 유난히 친했어요. 도쿄 원정가면 가끔 너무 비싸서 땅 밟고 다니기도 미안한 아카사카 술집도 함께 다녔어요.

그 때 이종범이 자랑했나 봐요. “나, 한국에서 무지 유명하다.”. “그러냐?” 해놓고 속으론 안 믿었어요. ‘선(동열)상만 하겠냐?’, 이랬나봐요. 그런데 이종범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한국에 와서 알게 됐대요.

10여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인기, ‘이종범이라 쓰고 신(神)이라고 읽는다’는 그 충성심까지. 세키가와 코치, 다음에 이종범 만나면 ‘몰라 봬서 미안하다’는 멋쩍은 웃음부터 지어야겠어요.

○아직도 헷갈리는 새 이름

지난해 말 일이에요. ‘섭’자에 들어가는 한자가 좋지 않다고 하더래요. 고심 끝에 미련 없이 바꾸기로 했어요.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어요. 이름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1월 20일, 사이판으로 전지훈련 가는 날 법원에서 최종 판결 떨어졌어요. 이젠 남섭이 아니라 준서에요. 롯데 내야수 박준서.

하지만 쉽지 않아요.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아직도 동료들은 준서 아닌 남섭이라 불러요. 스스로도 그래요. 옆에서 남섭이라 부르면 머리 돌아가는데 준서란 이름은 아직 생뚱맞아요.

시범경기 첫날, 대타로 나섰는데 장내 아나운서 언니가 이름 불러요. 아, 이런.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아요. 박준서의 새 이름 적응기는 아직 진행 중이에요.

○선동열 감독, 변치 않는 고향 단골집 사랑

삼성 선수단, KIA의 첫 시범경기 2연전을 앞두고 5일 광주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선동열 감독을 선두로 한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택받은’ 몇몇 선수들이 함께 숙소를 나섰어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들이 도착한 곳. 광주에서 ‘탕’과 ‘수육’으로 깊은 내공을 인정받고 있는 D식당이에요.

선 감독이 선수시절부터 단골이었어요. 한창 때는 전용냄비까지 있었어요. 선 감독, D식당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삼성의 첫 시범경기가 광주라는 소식 듣자마자 국제전화 때려서 예약했대요. 삼성 감독이라 대구에 살지만 광주 원정 때마다 D식당을 즐겨 찾아요.

특히 D식당 ‘탕’은 시도 때도 없이 생각 나요. 광주 원정 없을 때는 ‘거액’ 투자해 대구까지 공수할 정도에요. 사실 선 감독 요즘 대화할 때 경상도 사투리까지 가끔 써요. 반은 대구사람 됐어요.

대화도중 “파이다(‘별로다’라는 뜻의 대구 방언)”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쓸 정도에요. 그래도 추억 가득한 고향 단골집의 맛은 잊지 못하나 봐요.

○정운찬 총리의 변함없는 야구사랑

서울대 총장 시절부터 야구사랑 유명했어요. 그 분이 국무총리 된다기에 야구계는 술렁였어요. 폼 나고 광 나는, 월드컵축구장 부럽지 않은 최신식 돔구장 건설! 야구계 흥분해요. 하지만 총리, 역시 바빠요. 작년 9월 취임한 뒤로 줄곧 세종시 문제로 동분서주했어요. 야구인들은 그저 총리와의 옛 추억만을 곱씹을 뿐이에요.

하지만 총리는 역시 야구인들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한국야구위원회(KBO) 조희준 부장이 부친상을 당한 이튿날인 5일 밤, 야심한 시각에 예고도 없이 불쑥 총리가 빈소를 찾았어요. 국장급 정부 관리만 떠도 일찌감치 난리 블루스인데, 옛날에 야구장 다니던 때처럼 소탈하게 경호원 몇 명 안내만 받고 조문을 왔어요. 일본통인 조 부장에게 몇 차례 도움을 받은 인연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거예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총리는 야구계 지인들과 가볍게 소주잔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돔구장보다 낙후된 지방구장을 현대화하는 게 더 시급하지 않나요?”, “박찬호가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잘 된 것 같아요” 같은 야구얘기를 주로 언급 했어요.

국사에 바쁜 와중에도 변함없는 야구사랑이에요. 동석했던 야구인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서 “총리 끝나시면 KBO 총재 한번 하시라”는 얘기가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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