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브레이크] 쇼트트랙 강국이 ‘빙속 강국’ 만들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2월 18일 07시 00분


모태범, 이상화의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 동반 금메달은 한국 빙상의 패러다임 변화를 증명한다.

과거 한국 빙상의 주류 위치를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이 번갈아 점하는 제로섬식(式) ‘원톱’ 체제를 탈피해 이젠 두 종목이 나란히 세계적 경쟁력을 공유하는 상호보완적 ‘투톱’ 시스템으로 변환됐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에 채택(1992년 알베르빌올림픽)되기까지 빙상 인재라면 모두 스피드스케이팅에 쏠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1970년대 이영하, 1980년대 배기태 등이 대표주자다.

오죽하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안되는 선수들이 쇼트트랙을 탄다”란 말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젠 옛날 얘기인데도 쇼트트랙 사람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소리다.

그러나 알베르빌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딴 이후 쇼트트랙은 한국 동계종목의 확고부동한 엘리트로 군림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한국은 총 금17 ,은8, 동6개를 따냈는데 은1,동1개를 빼면 모조리 쇼트트랙이 거둔 성과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첫 금메달도 남자 쇼트트랙 1000m(이정수)에서 나왔다. 그 사이 스피드스케이팅은 은(알레르빌 김윤만), 동(토리노 이강석) 한개씩이 전부였다.

쇼트트랙에서 이따금 불거졌던 파벌싸움도 뒤집어보면 우수 인력이 그만큼 집중됐기에 나오는 현상이다.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은메달리스트 이승훈이 원래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듯 했던 스피드스케이팅이 모태범과 이상화를 앞세워 르네상스를 맞았다. 그렇다고 쇼트트랙과의 권력이동이 다시 벌어진 것은 아니다.

쇼트트랙은 쇼트트랙대로 건재하다. 오히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이 상생하는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빙속 선수들이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훈련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쇼트트랙은 반지름 8m이고, 스피드스케이팅은 23m인데 짧은 트랙을 오래 돌면 지구력이 증가하고 코너링도 훨씬 섬세해진다”란 제갈성렬 빙속 해설위원의 설명은 그래서 울림을 지닌다.

체육과학연구원 최규정 연구실장 역시 “스피드스케이팅은 곡선주로에서 원심력을 이겨내고, 스피드를 유지하는 기술적 요인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술습득만 잘 되면 체격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코너에서 스피드 증가를 위한 탄력밴드 훈련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공통이다.

비단 단거리뿐 아니라 빙속 장거리의 이승훈도 쇼트트랙에서 쌓은 강훈이 지구력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 중평이다.

여기에 피겨의 김연아까지. 황금 3각 편대를 구축한 한국은 이제 ‘쇼트트랙만 잘 하는 나라’에서 ‘동계올림픽 강국’으로 진화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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