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한체육회 AIBA에 ‘KO패’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월 26일 07시 00분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3일,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이 2009년 9월,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KABF) 유재준(63) 회장에게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유 회장의 자격정지 기간을 18개월에서 6개월로 축소했다. CAS가 AIBA의 폭정을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다. 이로써 유 회장은 2월부터 징계가 풀린다. 하지만 자국연맹의 일부승소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AIBA는 KABF가 국제대회에 무자격 팀 닥터를 파견했다는 이유 등으로 2009년 5월 한국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선수들을 볼모로 삼는 것은 상식 밖의 징계였다. 유 회장이 자격정지 처분을 수용하고서야 AIBA가 출전금지를 해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AIBA가 노리는 것은 하나 뿐. 유 회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유는 AIBA가 유 회장을, 우칭궈(64·대만) 회장 재선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AIBA는 2009년 5월 이후, 대한체육회 측에 유 회장의 인준취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힘의 논리를 이용한 부당한 내정 간섭이었다. 이에 대해 당초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장에 당선된 유 회장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자국연맹과 국제연맹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대한체육회의 당연한 역할.

하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대한체육회는 입장을 바꿨다. 2009년 12월, 서울 동부지법이 “대한체육회는 유 회장 인준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대한체육회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받아들였다. 전임 집행부가 포함된 원고 측의 논리는, 유 회장이 2007년부터 2년간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회장 자격이 없다는 것. 하지만, 유 회장의 회장선거 후보 등록을 받아준 이들이 바로 전임 집행부였다.

대한체육회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항소를 포기했다. 대한체육회관계자는 “항소포기는 대한체육회의 오류를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관계자들을 문책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징계는 없었다. 법원의 결정이 대한체육회로서는 ‘앓던 이’를 뺄 구실이었기 때문. 당시 대한체육회 최종준 사무총장은 “AIBA가 억지를 부리는 것은 맞지만, 선수들이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들었다. 적절한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한 대한체육회의 무능이 드러난 셈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거의 모든 가맹단체들은 여야 대립이 심각하다. 이번 일은 복싱계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체육계에 중요한 선례로 남을 수 있다. 타당한 절차를 통해 회장이 탄생하더라도 국제연맹과 결탁하면 새로운 집행부를 세울 수 있다는 망상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BA에 굴복한 대한체육회가 국제스포츠계의 조롱거리가 될 위기. 대한체육회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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