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되게” 집념이 일군 올림픽 꿈 “밴쿠버서 날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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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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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한국인 첫 출전 김호준

한국 스노보드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김호준이 멋진 공중 곡예를 선보이고 있다. 김호준은 2월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하프 파이프 종목에서 12명이 오르는 결선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스노보드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김호준이 멋진 공중 곡예를 선보이고 있다. 김호준은 2월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하프 파이프 종목에서 12명이 오르는 결선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 살 때인 1993년. 스키숍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눈과 친해졌다. 아버지 손을 잡고 스키도 배웠다. 무서웠지만 재미있었다. 5년 뒤 우연히 스노보드를 접했다. 타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용 스노보드는 국내에 없었다. 힘들게 유럽에서 구했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아버지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아들을 가르쳤다.

점점 실력이 느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결단을 내렸다. 아들을 서울에서 강원도로 전학시켰다. 아들은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했다. 열한 살 때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소년은 목표가 있었다. 국내대회 1등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꿈은 중학교 1학년 때 이루어졌다. 이제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었다.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훈련을 하다 발목을 크게 다쳤다. 인대가 손상돼 1년 반 동안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래도 스노보드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1년 뒤 꿈에도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위해 수천만 원이 드는 해외 훈련 경비도 마련했다.

지난해 고난도 기술 훈련 중 턱이 깨지고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피가 상의의 반을 적실 정도였다. 다시 타는 것이 무서울 법도 했다.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싫었다. 며칠 뒤 실패했던 기술을 기어코 완성했다. 안 되는 기술이 있으면 될 때까지 해야 숙소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노력에 협회 스노보드위원회도 전격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그런 노력 끝에 지난해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3월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꿈은 다시 한층 높아졌다. 겨울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 아직 한국 스노보드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아 본 적은 없다.

하프 파이프(반원통형 슬로프에서 공중곡예를 겨루는 종목)가 주종목인 소년은 올 시즌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월드컵 랭킹 40위보다 높은 34위에 올랐다.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한국 선수로서 첫 출전을 거의 확정지었다. 18일 공식 발표만 남았다. 꿈은 끝났을까? 김호준(20·한국체대·사진)의 꿈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는 13일 “이제 목표는 12명이 오르는 올림픽 결선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면 메달이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그를 가르치고 있는 김수철 대표팀 코치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기량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런 상승세면 2014년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년의 꿈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김호준은?

△생년월일=1990년 5월 1일 △출신교=강원 진부초-진부중-강원체고-한국체대 △체격=177cm, 63kg △취미=컴퓨터 게임 △스노보드 입문=8세 △월드컵 랭킹=34위(2009∼2010시즌) △선수 경력=2008년 동계체전 남자 일반부 1위, 2009년 하얼빈 겨울유니버시아드 은메달, 국제스키연맹(FIS) 내셔널 챔피언십 우승, 월드컵 파이널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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