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그 후]<10·끝>영화 ‘국가대표’ 실제주인공 스키점프 대표팀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영화 덕에 인기는 금메달감인데…
“불안한 미래 바뀐게 없어요”

광고 찍고 소속팀도 생겼지만 스폰서 없어 훈련 제대로 못해
새 경기장 눈 못뿌려 무용지물 내년2월 밴쿠버올림픽 큰 부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22일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호텔 직원식당 앞. 사람들이 근처에 앉아 있는 5명을 보더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안녕하세요” “힘내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며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1시간여 동안 약 400명이 다녀갔다. 유명 연예인의 팬 미팅을 방불케 한 사인회의 주인공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었다.

한 달간의 해외 대회 출전과 전지훈련을 마치고 이날 오전 귀국한 대표팀은 오후에 팬 사인회와 스키 강습회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대표팀이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영화 덕분이다. 스키점프 선수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그린 영화 ‘국가대표’는 관객 837만 명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다큐멘터리는 물론이고 광고와 책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소외 종목 중 하나였던 스키점프가 어느새 최고의 인기 종목이 된 것이다.
스키점프 대표팀이 22일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에서 열린 팬사인회를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면서 내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흥수 코치, 강칠구 최용직 최흥철 김현기. 정선=홍진환 기자
스키점프 대표팀이 22일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에서 열린 팬사인회를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면서 내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흥수 코치, 강칠구 최용직 최흥철 김현기. 정선=홍진환 기자

○연락 뜸하던 친구도 연락

대표팀은 김흥수 코치(29)를 비롯해 최흥철(28) 최용직(27) 김현기(26) 강칠구(25) 등 5명이다. 이들은 막내인 강칠구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18년간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영화 개봉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다르다. “17년 8개월과 나머지 4개월간의 생활은 하늘과 땅 차이죠.”

최흥철은 “예전에는 스키점프 선수라고 소개할 때 종목 설명부터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빛부터 다르다”고 했다. 김현기는 “1년에 한두 번 안부만 묻던 친구들이 영화 개봉 이후 거의 매일 전화한다”며 웃었다.

대표팀은 막노동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제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최흥철과 김현기가 하이원에 입단했고, 최근 김 코치와 나머지 선수 2명도 하이원 소속이 되면서 일정한 수입이 생겼기 때문이다.

○훈련 여건과 불안한 미래는 여전

관심이 커졌다고 근본이 바뀌지는 않았다. 훈련 여건과 불안한 미래는 그대로다. 훈련비를 대줄 팀 스폰서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 대표팀은 대여섯 개 기업에서 후원을 받는다.

김현기는 “팀 스폰서가 없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훈련 여건은 비슷하다. 이번 해외 대회 경비는 하이원에서 대줬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평창에 스키점프 경기장이 완공됐지만 눈을 만들 제설 경비가 없어 훈련은 꿈도 못 꾼다. 최흥철은 “무주에 경기장이 하나 더 있지만 거의 방치된 수준이라 사용할 수 없다. 외국에 나가 경기 전 잠깐 훈련하는 것이 실전 훈련의 전부다”고 말했다.

이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후배 양성의 어려움이다. 김현기는 “스키점프 선수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e메일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지도자가 부족해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부담되기도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부담도 크다. 최흥철은 “내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이야기만 나오면 ‘금메달 꼭 따세요’라고들 덕담을 한다. 우리 실력으로는 메달 따기가 힘든데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현기는 “부담이 커서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했는데 일부에서 ‘인기 좀 얻었다고 거만해졌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

어쨌든 언제까지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만 머물 수는 없는 일. 선수들은 “스키점프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영화의 힘이었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만들어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선=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