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정신력도 조직력도 잃었다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선수는 ‘투지’ 실종… 구단은 ‘협조’ 실종… 협회는 ‘관리’ 실종

“25일은 한국 배구의 국치일(國恥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배구 관계자는 한국 여자배구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2승 5패로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자배구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차지했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5위에 올랐다.

그런 여자배구가 추락한 것은 이미 예고된 재앙이었다. 선수와 대한배구협회, 각 프로구단이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따로 논 탓이다.

○ 고개 숙인 한국 여자배구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배구 강국이 아니었다. 라이벌 일본에 1-3으로 패하는 등 최근 11연패하며 확연한 실력 차를 드러냈다. 약체 카자흐스탄과 도미니카공화국에도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졌다.

가장 큰 이유는 주포 김연경 황연주(이상 흥국생명)와 센터 정대영(GS칼텍스)이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대한배구협회 관계자는 “일부 구단에서 국가대표 차출에 협조하지 않아 팀 구성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약간의 부상이 있는 선수는 중요한 순간에 역할을 해주면 되는데 이마저 거부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 사라진 한국배구의 악바리 정신

한국은 이번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교체 멤버도 없이 악전고투했다. 한유미(현대건설) 등 일부 선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투지는 약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대표를 지낸 박미희 KBS 해설위원은 “예전에 비해 키와 몸집은 커졌지만 기본기와 정신력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과거에는 올림픽에 나간다는 자체가 선수에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 선수들은 그런 책임감도 없다. 박 위원은 “올림픽 출전 선수에게 연봉 협상 시 인센티브를 주는 등 당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아마추어와 프로의 협조 필요

아마추어 배구를 관할하는 대한배구협회와 프로배구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 각 구단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게 배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협회와 연맹이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카자흐스탄 선수들은 외국 리그에 진출해 실력이 일취월장한 반면 한국은 국내리그에만 매달려 선진 배구를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

한 배구 관계자는 “한국은 일부 스타급 선수에만 매달려 그 선수가 부상하면 전력이 급락한다”며 “차세대 꿈나무 육성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