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특별기고]올림픽 성화 봉송 방해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01분


성화의 수난은 있어도 올림픽 보이콧은 없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자체를 보이콧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화 봉송을 막는 인권운동가들은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번 성화 봉송과 연관된 정치적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올림픽 성화가 고귀하다면, 인권은 그보다 더 고귀하다.” 이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지난달 베이징 올림픽 성화 채화식에서 항의 시위를 할 때 내건 플래카드다. 그 이후로 성화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도 뉴델리 등을 돌며 거칠거나 폭력적인, 때론 익살맞은 상황을 연출했다. 성화를 지키는 중국 경호원들은 때론 다른 나라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런 경호 형태는 중국이 티베트와 미얀마, 그리고 자국의 인권을 가차 없이 억압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올림픽 성화가 화합의 상징이라는 의미는 이미 사라졌다. 성화는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도구로 전락했다. 나는 이 성화가 한국 땅을 지나갔을 때 한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또 한국을 떠난 성화가 평양으로 갔을 때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취재했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세계의 모든 국가 선수들이 서울을 찾아 올림픽 화합 정신을 함께했지만 북한 선수들은 오지 못했다.

이번 성화 봉송은 1988년 서울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당시 한국 대학생들은 매일 경찰과 대치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올림픽은 군사정권에 항의해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위해 싸울 좋은 기회였다.

한국이 20년 전에 겪은 일들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중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첸 쿠이드 교수는 중국의 톈안먼 사태와 한국의 5·18민주화운동을 비교하기도 했다. 서울이 올림픽을 통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룬 것을 보면 중국이라고 안 될 것은 없다.

200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개최권을 중국에 주었다. 그때도 베이징 올림픽 개최 관련 시위는 있었다. 스위스의 시사만화가 패트리크 차파테는 오륜기 모양을 탱크의 바퀴로 바꿔 티베트 시위대로 돌격하는 모습을 풍자하기도 했다. IOC도 중국의 인권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1936년 베를린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때 아돌프 히틀러가 올림픽을 어떻게 이용할지 아무도 몰랐다. 히틀러는 개최지로 결정될 당시 권력자가 아니었다. 아이러니는 성화 봉송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후 70여 년이 지난 요즘에도 성화는 여전히 조화보다는 부조화의 상징으로 비치는 듯싶다.

그래도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각국이 날로 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숟가락을 걸치고 싶어 안달이기 때문이다. 또 TV 중계권자들과 스폰서들, 그리고 각 기업은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중국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流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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