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외국인 감독 아래서 3번타자 노린다”

  • 입력 2007년 11월 28일 14시 02분


정수근(30)은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2003년 겨울, 국내 최고의 톱타자였던 정수근은 롯데와 총액 40억 6000만원에 FA계약을 맺었으나 이후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입단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야구장 밖에서 음주 폭력사건에 연루됐고 구단과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수근은 롯데의 부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수다. 구단과 팬들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그에 대한 기대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지난 27일 롯데의 새 연습장인 상동야구장에서 정수근을 만났다. 지금 정수근은 자신과 팀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바로 3번 타자로의 변신이 그것이다. 빼어난 스피드를 앞세웠던 ‘리드오프히터의 대명사’ 정수근을 떠올린다면 3번 타자로의 변신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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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른 줄에 접어든 정수근은 이제 중거리 타자로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올 시즌 후반기부터 그의 장타율이 부쩍 좋아지기도 했다. 물론 그를 3번에 기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권한이지만 정수근이 의도한대로 완벽한 중거리타자로 변신한다면 이대호 외에는 이렇다할 거포가 없는 롯데의 중심타선에 기용되는 것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야구 스타일의 변화, 그리고 새로 영입된 롯데의 외국인 감독, 정수근은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있다.

<인터뷰 전문>

-스스로 올 한해를 결산해 본다면

정수근(이하 정) : 후회가 많죠. 많이 준비했는데 초반에 좀 안 풀렸습니다. 다행히 후반에 감을 좀 잡아 마무리는 잘 한 것 같네요.

-롯데 이적 후 과거만큼 성적이 잘 안나오고 있습니다.

정 : 뭐 제가 못하는 거죠. 내년에는 두산에 있을 때만큼 잘하도록 해야죠.

-예전에 비해 도루가 많이 줄었습니다. 발이 느려진 건가요?

정 :아직도 도루는 30개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1번 타자보다는 3번타자 쪽에 맞춰서 훈련중입니다. 스스로 타력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과정에서 도루가 좀 줄어들었죠. 이제는 그런 변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원래의 장기도 함께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롯데에 이대호를 제외하고는 거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 인가요? 올해 정수근 선수의 장타율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정 : 장타를 생각하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변화를 꾀하다 타격이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이 몸에 배면서 자연스럽게 비거리도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홈런보다는 중거리타자로서 많은 2루타를 쳐 준다면 팀의 3번 타자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성적이 향상된 다른 기술적인 이유도 있습니까?

정 : 타격코치님과 많은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좋아진 것 같습니다. 또 후반기에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시즌 중 플래툰 시스템으로 마음고생이 좀 있었나요?

정 : 야구하기 싫었죠.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SK 김재현 선수도 전에 플래툰 때문에 성적이 안나오니까 야구 그만 두고 싶었다는 말을 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경기에 나가서 안타 3개 쳤는데 다음날 빠지면 이거 정말 야구할 맛 안 나거든요. 저도 욕심은 많은 사람입니다. 되든 안 되든 경기에 나가고 싶고, 또 붙어서 이기고 싶은 것이 선수 마음인데 뛸 수 없다는 게 참 답답했죠.

-제리 로이스터라는 새로운 외국인 감독이 왔습니다. 롯데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 :외국인 감독이 오신다고 해서 선수단 분위기도 아주 좋습니다. 그동안 롯데라는 팀이 다소 고지식한 면이 많았는데 외국 감독이 오면 그런 부분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또 그동안의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이제 좀 더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네요.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정수근 선수 개인의 기대는?

정 :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들 보셨겠지만 외국 감독들은 시합 중에 크게 인상 안 쓰고 선수들을 믿고 맡기잖아요. 그런 점이 저에게는 편할 것 같습니다. 또 외국인 감독이 오면 저에 대한 편견도 없어질 테니 이제 무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죠.

-편견이라고 하셨는데, 전임 강병철 감독이 정수근 선수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 : 글쎄요. 연습안하고 매일 노는 선수로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노는 거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수가 시간 나면 놀고 운동할 때는 열심히 하는 게 프로야구 선수라 생각하는데요. 어쨌든 그런 편견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산에서 전성기를 보내셨는데요. 과거 친정팀, 두산에 대한 그리움은 있나요?

정 : 물론 있죠. 없으면 거짓말이구요. 아무래도 그 팀에서 10년을 뛰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은 그런 그리움은 다 털어버렸고 여기 선수들이랑 잘 지내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이제 부산 팬들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고요. 처음엔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정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게 롯데와 부산의 매력인 것 같아요.

-FA 당시 두산을 떠나 롯데로 이적하면서 고민이 많았는지?

정 : 이적은 일종의 비즈니스죠. 선수들이 못하면 언제든지 팀에서 버림을 받을 수 있고 또 선수는 팀을 옮길 수도 있는 것이죠. 자기가 조금 손해 보면서 팀에 남는 상황도 있겠지만 당시에 두산은 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저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요. 그런 부분이 안 맞았을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정수근 선수의 야구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 : 아무래도 김인식 감독님이죠. 가끔 전화통화를 하는데, 저에게 ‘심리 치료 담당 의사’와 같은 분이십니다. 늘 저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세요. 야구 뿐 아니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에 이종욱, 이대형, 이용규 등 차세대 톱타자들이 맹활약 중입니다. 선배로서 이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정 : 짧게 치고 잘 뛰고, 다 좋은데 지금보다 좀 더 비거리를 늘려야 하고 또 이들이 부상을 당하면 팀 전력에 큰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몸 관리도 잘 해야 합니다. 정말 뛰어난 선수들인데 제가 조언을 해주고 싶어도 할 게 없네요.

-정수근 선수가 생각하는 국내 최고의 1번 타자는 누구일까요?

정 : 정말 제가 존경하고 지금도 마음먹고 뛰면 누구보다 많은 도루를 할 수 있는 이종범 선배가 아닐까 싶어요

-올스타전 같은 큰 경기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정 : 그냥 경기를 즐기는 거죠. 즐기면서 하기 때문에 실력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롯데에서도 고참급인데 주장 한번 하실 생각은 없나요?

정 : (고개를 저으며) 머리 아프잖아요. 저는 자유롭게 살다 자유롭게 가고 싶습니다. (웃음)

- 서울 토박이였는데 부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정 : 지금 만족합니다. 딱딱하지 않고 시원시원한 것 같아요. 먹거리도 많고 바닷가 가서 마음도 추스를 수 있고...

-끼가 많으신데, 은퇴 후에 연예계로 진출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정 : 아직까지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앞으로 야구는 7~8년 정도 더 하고 싶어요. 그 안에 이루고 싶은 거 모두 이루고 싶습니다. 과거에 두산 있었을 때 자주 4강에 오르고 한국시리즈도 나갔었는데 롯데에서도 우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들 호준이도 야구를 시키실 생각인가요?

-아직 어리니까 몇 년 더 있다가 자기가 하고 싶다면 시킬 생각입니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화보]‘호타준족의 대명사’정수근 야구인생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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