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직접 캐디로… 목-허리에 디스크
“아들 우승했으니 이젠 관리만 할래요”
최근 국내 프로골프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한 배상문(21·캘러웨이).
그가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보기 드문 ‘골프 맘’ 시옥희(49) 씨의 남다른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 씨는 이 대회에서 나흘 내내 아들의 캐디로 나섰다. 54kg의 가냘픈 체구로 20kg이 넘는 캐디 백을 연일 갖고 다니다 보니 대회가 끝났을 때는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지만 마음만큼은 날아갈 듯했다.
골프 맘 신 씨의 성공 사연은 골프선수를 둔 다른 부모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들이 생후 5개월 때부터 아버지 없이 홀로 키워야 했던 시 씨는 당시 여유가 있어 여섯 살 꼬마였던 배상문의 손에 골프채를 잡게 했다. 다행히 재능이 있어 대구 수성중 2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1주일에 라운드 3, 4회에 씀씀이가 커지다 보니 한 해 7000만 원 가까운 경비가 들어간 데다 집안형편도 빠듯해졌다. 고교 2학년 때는 당시 1억5000만 원 하던 아파트를 팔기에 이르렀다.
“그린피가 엄청 비쌌고 옷, 장갑에다 한 박스에 7만 원이 넘는 공 값 대기도 만만치 않았죠.”
2004년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형편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2부 투어를 도는 데 한 해에 1억 원의 경비가 들어갔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 라운드 두세 번에 50만 원 정도가 나갔고 숙식비, 차량 기름값 등을 따지면 1주일에 1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주택담보대출도 부족해 반지 등 패물 등을 닥치는 대로 팔았다. “돈이 없어서 프로에게 제대로 한번 배워 보지 못했어요. 한 번에 50만 원 정도 하는 포인트 레슨만 몇 번 받게 했죠.”
유명 프로에게 레슨 받으려면 수백만 원을 내야 하고 필드 레슨 한 번에 10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 씨는 하루에 10만 원 가까운 캐디피라도 아껴 볼 요량으로 4년 전부터 직접 캐디 백을 메기에 이르렀다. 운전면허가 없는 아들을 대신해 핸들을 잡고 전국 방방곡곡을 운전하며 다니느라 목과 허리에 디스크까지 생겼다.
이런 지극 정성 덕분인지 배상문은 지난해 17개 대회에서 1억28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데 이어 올해에는 SK텔레콤 오픈 우승만으로 1억2000만 원을 챙겼다.
투어 프로들도 적어도 한 해 8000만 원 이상의 상금을 벌어야 적자를 면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상금 순위 25위 이내에는 들어야 한다.
시 씨는 “선수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부모가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돌봐 주지 않으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우승하면 캐디는 안 할 것”이라고 아들과 약속했던 시 씨는 “캐디에선 은퇴했지만 아들 관리는 당분간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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