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AG 유치]역대 최고 접전 …표 맞대결은 처음

  • 입력 2007년 4월 17일 22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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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승리했지만 영광의 상처는 남았다'

2014년 하계아시안게임 개최지를 다퉜던 인천과 뉴델리 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 지를 바로 보여주는 말이다.

인천과 뉴델리의 맞대결로 치러진 탓에 투표에 참가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45개국 회원국은 양자택일에 따르는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스포츠 대통령'으로 통하는 셰이크 아메드 알-사바 OCA 회장(쿠웨이트)마저 치열한 대결에 `중립을 지키겠다'며 발을 뺀 것은 각국 대표단이 받은 스트레스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한국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3회 연속 2위를 차지한 스포츠 강국인데다 굵직한 국제스포츠 이벤트 개최 경험이 풍부한 반면 인도는 셰이크 아메드 회장과 15년 넘게 임기를 함께 해온 최측근 란디르 싱 OCA 사무총장의 조국이자 10억이 넘는 거대 인구를 거느린 아시아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대 아시안게임 개최지 결정에서 표 대결은 1986년 서울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등 두 차례 있었으나 단 두 개 도시가 맞대결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부분 총회 맞대결 전에 유치 도시가 스스로 신청을 철회하거나 OCA 내부의 정치력에 의해 한 쪽에 다른 선물을 주는 형식으로 상처 없이 개최지를 결정하는 게 다반사였다.

대표적인 표 대결이라고 해봤자 2006년 도하 대회 뿐이다.

2006년 대회를 놓고 카타르 도하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홍콩, 뉴델리 등 4개 도시가 유치 경쟁을 벌였고 결국 OCA 총회 1차 투표에서 뉴델리가 탈락한 뒤 결선투표를 통해 도하가 승리했다.

4개 도시의 경쟁 끝에 개최지가 결정된 만큼 정면 충돌만큼의 충격파는 크지 않았다.

또 1986년 대회 결정 때는 서울과 함께 유치 신청서를 냈던 북한 평양과 이란 바그다드가 투표 전에 자진 철회했고 부산이 2002년 대회 유치시 `2개 중국은 있을 수 없다'며 대만 가오슝 반대에 적극 나선 중국의 로비 덕에 비밀투표가 아닌 거수투표를 거쳐 37대 4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2010년 대회를 유치한 광저우(중국)는 쿠알라룸푸르가 유치 신청 포기로 개최권을 거저 주웠다.

이번 2014년 대회 인천 유치 과정에서 `남아시아의 맹주'인 인도는 `2014년 하계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을 한국이 독식하려 한다'며 인천을 공격하는 등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인천과 뉴델리 유치위는 투표 직전 `어느 쪽이 되더라도 결과에 승복하자'는 신사협정을 맺고도 각국 NOC 대표 초청 만찬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몸싸움이 일어나는 등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고 결국 투표 끝에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2014년 대회 유치에 성공한 인천으로서는 승자의 너그러운 미덕으로 뉴델리를 감싸 안아야 하고 OCA 도 내부 분열을 막기 위한 조정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셈이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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