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km남기고…베링해협 횡단 원정대 ‘아름다운 실패’

  • 입력 2007년 3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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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베링해협 횡단에 도전했던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9일 유빙에 밀려 횡단에 실패하고 미군 헬기에 구조됐다. 사진은 박 대장이 도전을 포기하기 직전 난빙(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갈라진 얼음덩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촬영 이형모 대원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베링해협 횡단에 도전했던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9일 유빙에 밀려 횡단에 실패하고 미군 헬기에 구조됐다. 사진은 박 대장이 도전을 포기하기 직전 난빙(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갈라진 얼음덩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촬영 이형모 대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대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실패를 소중한 경험 삼아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박영석(44·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사진) 원정대장의 목소리는 방금 사지에서 구조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박 대장이 이끄는 베링해협 횡단 원정대(후원 동아일보, ㈜LG, 노스페이스)가 9일 강풍에 따른 유빙의 빠른 이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쉽게 원정을 접었다.

박 대장과 오희준(37·노스페이스 알파인팀·서귀포영천산악회) 이형모(28·관동대 산악부 OB) 등 3명으로 구성된 베링해협 횡단 원정대는 9일 오전 7시 5분(한국 시간) 미국 알래스카 슈워드 반도에서 27km 떨어진 북위 65도 18분 30초, 서경 168도 19분 26초 지점에서 미군 헬기에 의해 구조돼 인근의 작은 마을 놈에 무사히 도착했다.

5일 오전 9시 35분(현지 시간 오후 12시 35분) 러시아 추코트 반도 우옐렌 해안(북위 66도 1분, 서경 169분 38분)을 출발한 지 ‘3일 21시간 30분’ 만의 일이다. 당초 원정대는 19일 직선거리로 88km 떨어진 알래스카 주 해안 마을인 웨일스(북위 65도 35분, 서경 168도) 도착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원정대는 영하 30도 이하의 강추위와 함께 불과 20m 앞에서 대형 고래를 만나거나 사나운 북극곰과 대치하는 등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원정 첫날 5시간 만에 10km를 진행하는 등 순조로운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강풍이라는 ‘자연의 힘’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원정을 시작한 뒤 이틀 동안 남풍이 불어 항상 북쪽으로 흐르는 조류와 함께 얼음판이 최고 시속 3km까지 북쪽으로 움직여 잠을 자고 일어나면 북극해 쪽으로 밀리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원정 사흘째인 7일부터 바람의 방향이 서북풍으로 바뀌며 유빙이 흐르는 방향도 동남쪽으로 바뀌어 동쪽으로 행진하는 원정대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바람의 세기가 문제였다. 태풍(초속 17m 이상)을 능가하는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이 계속돼 유빙이 원정대의 발걸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시속 5.8km로 움직여 원정대는 태평양쪽으로 계속 떠내려가는 바람에 결국 구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정대가 올라타고 있던 유빙은 구조 직전인 8일 밤에만 무려 50km 가까이 남쪽으로 움직였다.

베링해협은 예측 불허의 조류와 강풍으로 역사상 단 2번만 도보 횡단을 허용한 난도가 높은 탐험 코스.

박 대장은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와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남극점 및 북극점 도달)을 이뤄내자마자 다음 도전 대상지로 베링해협을 꼽고 2년 가까이 원정을 준비해 왔다. AP 등 세계 주요 통신은 앵커리지발로 이번 원정대의 베링해협 횡단 도전과 구조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실패를 발판 삼아 반드시 다시 도전하겠다”는 박 대장 등 원정대는 15일경 귀국해 31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 서남벽 쪽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네팔로 떠날 예정이다.

라브렌티야(러시아)=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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