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선생 마라톤제패 70주년…‘손기정 정신’ 되살려야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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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생이 보여 준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에서 열린 ‘손기정 선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손기정과 민족정기’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손기정 선생이 보여 준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에서 열린 ‘손기정 선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손기정과 민족정기’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1996년 베를린 올림픽 제패 60주년을 맞아 베를린올림피아슈타디온을 찾은 생전의 손기정 선생. 올림픽 우승자 명단에는 여전히 손 선생의 국적(원 안)이 ‘일본’으로 표시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96년 베를린 올림픽 제패 60주년을 맞아 베를린올림피아슈타디온을 찾은 생전의 손기정 선생. 올림픽 우승자 명단에는 여전히 손 선생의 국적(원 안)이 ‘일본’으로 표시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사는 한국체육학회(회장 강신복 서울대 교수)와 공동으로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대강당에서 ‘손기정 선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손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의미와 그의 삶에 대한 회고, 한국 마라톤의 현주소와 미래 진단의 두 주제로 나뉘어 열렸다.

성기훈(서울교대) 교수와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 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의 아들인 이태영 스포츠포럼21 대표가 사회를 맡았고 6명의 전문가가 발제와 토론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신필렬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손 선생은 암울한 일제강점 하에서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워 준 영웅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로 암흑 천지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우리도 당당히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겼다. 민족 언론의 역할도 고무적이었다. 특히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말소한 사진을 지면에 실어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손 선생의 올림픽 제패와 민족 언론이 결합해 죽어 있던 민족의식을 되살린 것이다.

▽조동표 스포츠 평론가=일본은 대표로 선발된 손기정과 남승룡에게 출전권을 주지 않기 위해 베를린에서 다시 선발대회를 열었다. 마라톤 19일 전에 풀코스를 뛰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도의 부담을 주는데도 일본 선수를 대표로 넣기 위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역시 손기정이 1위, 일본인 스즈키가 2위, 남승룡이 3위를 차지했고 스즈키는 지름길로 달린 것이 알려져 실격돼 손기정 남승룡과 다른 일본인 등 3명이 대표로 나가게 됐다. 19일 뒤 손기정은 우승, 남승룡은 동메달을 차지해 일본에 다시 한번 치욕을 안겼다.

▽곽형기 동덕여대 교수=올림픽은 세계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이상을 실현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손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은 조선반도를 한 달 내내 ‘기쁨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손 선생이 보여 준 꿈과 소망, 실패와 좌절, 무엇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정신력이 조선 민족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남상남 한양대 교수=마라톤 선수를 비롯해 육상 선수와 지도자, 마라톤 동호인 등 7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4.5%인 110명만이 한국 마라톤은 ‘매우 장래가 있다’고 답했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응답자는 20.9%(159명), ‘문제점이 많다’는 응답자는 24.8%(189명)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마라톤 최고 기록이 남자는 2000년 이봉주가 세운 2시간 7분 20초, 여자는 권은주가 1997년 기록한 2시간 26분 12초로 답보 상태다. 엘리트 선수도 줄고 있다.

▽성봉주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국 마라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선 7가지가 필요하다. △마라톤 전문 연구단체 설립 △저변 확대를 위한 정책 수립 △연구자, 선수, 지도자의 삼각 지원 체제 확립 △선수들의 의식 개혁 △스피드 중심 훈련법 △여자 마라톤 특별 대책 △행정기관의 특별한 정책적 지원이다. 무엇보다 발전기금 조성 및 발전재단의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나가타 고이치 코오롱 마라톤팀 감독=일본이 마라톤 강국인 이유는 간단하다.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 과제를 발견하고 목표를 설정한 뒤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훈련시킨다. 선수는 목적의식이 투철해야 하며 지도자는 스포츠과학에 입각해 지도해야 한다. 또 스포츠 의학, 영양학, 심리학 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마라톤은 종합과학이다.

정리=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잘못 알려진 손기정-베를린 올림픽

936년 8월 9일 베를린 찜통더위는 아니었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아시아인이 우승한 것은 딱 두 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생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황영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56년 세월의 강이 있지만 두 대회는 여러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 우승자가 둘 다 한국인이고 대회 날짜도 같은 8월 9일. 손 선생이 시상대에서 월계관을 쓸 무렵인(출발 시간은 오후 3시 2분) 오후 6시에 배턴터치하듯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출발했다. 참가 선수는 베를린이 56명(27개국)이고 바르셀로나는 꼭 2배인 112명(73개국). 한국 선수 2명과 외국 선수 1명이 후반 레이스를 펼친 것도 비슷하다. 바르셀로나에선 29km 지점부터 황영조 김완기와 모리시타(일본)가 각축을 벌였다. 베를린에선 35km 지점부터 손기정 남승룡과 하퍼(영국)가 3파전을 벌였다.

시상식 장면도 상징적이다. 베를린에선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두 번(1, 3위)이나 올라갔지만 바르셀로나에선 태극기 밑에 일장기(2위)와 독일 국기(3위)가 올라갔다. 1936년 우리 민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제와 히틀러의 독일이 56년 만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셈. 하지만 잘못 알려지거나 부풀려진 사실도 있다.

□1 손 선생은 폭염 속에서 달리지 않았다

1936년 8월 9일 오후 3∼6시 베를린은 섭씨 21∼22.3도, 습도 20%의 맑고 건조한 날씨였다. 마라톤 최적 기온(섭씨 10도 안팎, 습도 30%)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듯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는 아니었다. 더구나 1∼13km와 30∼42.195km 구간은 10만 평의 그뤼네발트(‘녹색 숲’이라는 뜻) 공원을 달리는 숲 속 길. 지금도 200, 300년이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해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다만 13∼30km 지점의 직선 고속도로(아푸스아우토반)를 달릴 때 약간 더웠으리라 생각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섭씨 28도에 습도 80%의 한증막.

□2베를린 올림픽 코스는 거의 평평했다

소위 ‘빌헬름 황제 언덕’(35km 지점)이나 ‘비스마르크 언덕’(40km 지점)은 없다. 그 지점은 표고 2m 정도의 약간 오르막 부분일 뿐. 코스를 답사한 황영조(36·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40km 지점의 페르스트라야 철교 아래 S자 오르막은 달려온 탄력으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다. 더구나 당시 손 선생은 2위 하퍼를 2분 거리로 떨어뜨린 상황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는 표고 50m가 넘는 몬주익 언덕(40km 지점)에서 모리시타를 따돌렸다.

□3손 선생의 우승 기록은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이 아니다

손 선생의 우승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100m를 평균 21.23초의 속도로 달린 것.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이자 2시간 30분 벽을 처음으로 깬 것. 하지만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은 손 선생이 1935년 11월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대회에서 세운 2시간 26분 42초. 이 기록은 12년 뒤인 1947년 4월 손 선생의 제자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하며 갈아 치웠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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