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결승 진출]‘아마 최강’ 세계최강 넘보다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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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39회 야구월드컵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한국야구대표팀은 쿠바와 결승에서 맞붙어 패했다. 당시 경기가 끝난 뒤 쿠바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스파이크와 가방 등을 좀 달라고 애원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2300달러(약 230만 원·2003년)에 불과한 어려운 쿠바의 경제 형편 탓에 변변한 야구 용품 하나 장만하기 어려웠기 때문.

○ “미국을 이기자” 국가차원 전폭 지원

그때 출전했던 선수들 대부분인 쿠바야구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결승까지 올랐다. 30명 엔트리 전원이 아마추어인 쿠바가 메이저리그 출신의 쟁쟁한 프로 스타들이 즐비한 WBC에서 세계 최강의 문턱까지 내달린 것이다.

당초 쿠바는 WBC에 나설 수조차 없었던 게 사실. 미국 재무부가 경제 제재국인 쿠바의 출전을 불허했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쿠바는 WBC 배당금을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기금에 쓰기로 한 뒤에야 겨우 초청장을 받을 수 있었다.

쿠바는 16일 발표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명의의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선 ‘독재체제’의 대표적인 국가로 지목받아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 아마팀 4000개에 등록선수 12만명

이런 차가운 분위기도 승리를 향한 쿠바 선수들의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쿠바 선수단은 출전국 가운데 유일하게 개인 인터뷰가 허용되지 않았고 늘 숙소에만 머문 채 외출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미국에 망명이라도 할까 경계했던 것. 그래도 쿠바 이히니오 벨레스 감독은 “우린 이름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뤄졌다”며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게 승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메이저리그 수준 클럽도 16개 이르러

쿠바 야구가 이처럼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데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비롯됐다. 1860년대 야구가 도입된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야구선수 출신 피델 카스트로의 후원으로 야구를 더욱 꽃피웠다. 야구를 자본주의 마약으로 여기며 금지한 다른 공산국가와 달리 오히려 미국에 맞설 스포츠로 발전시킨 것. 쿠바야구대표팀은 이번 WBC에서도 미국과 결승에서 맞붙어 이길 것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쿠바는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해 스포츠학교를 통해 체계적으로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추어팀은 4000개 가까이 되고 선수만도 12만 명. 쿠바 인구가 1120만 명 정도이니 국민 100명 가운데 한 명이 야구선수인 셈. 메이저리그 수준이라는 16개의 국립 클럽팀이 있으며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총 90경기를 치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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