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압박축구’ 월드컵 평정

  • 입력 2002년 6월 30일 18시 29분


4일 폴란드전에서 폴란드 야체크 크시노베크 선수(左)가 박지성 선수와 송종국(右) 선수에게 협공 당하고 있다. [AP]
4일 폴란드전에서 폴란드 야체크 크시노베크 선수(左)가 박지성 선수와 송종국(右) 선수에게 협공 당하고 있다. [AP]
2002 한일월드컵을 대표하는 전술은 무엇일까.

볼을 가진 상대를 수비수 서너 명이 순식간에 에워싸는 농구의 올코트프레싱을 연상케 하는 ‘압박축구’가 바로 2002월드컵의 가장 두드러진 전술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통해 세계 축구의 새로운 조류로 떠올랐던 압박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특히 승부처의 ‘키워드’이자 우승 후보들을 침몰시킨 이변의 원동력으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이제 ‘축구는 운동장을 넓게 써야 제격’이라는 말은 통하지가 않을 정도로 강한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압박축구가 단연 돋보였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현상은 압박이 위치를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이뤄졌다는 점.

과거에는 미드필드에서 볼을 뺏고 뺏기는 공방을 펼치는 게 보편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중거리슛 한 방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아크 주위와 측면 크로스패스가 올라가는 터치라인 등 위험지역 부근에서도 볼 점유를 위한 압박이 중원에서의 강도 못지않게 치열하게 이뤄졌다.

이에 따라 좁은 공간에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정확하고 간결한 패스워크와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과 유기적인 조직력, 그리고 볼을 빼앗은 뒤 원투 터치 패스로 득점하는 골 결정력은 압박축구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이런 적극적이고도 공격적인 전술 흐름은 약체로 평가되던 팀들이 강호들을 격파하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세계 축구 평준화 현상을 부채질했다.

1승도 어렵다던 개최국 한국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깨며 4강 신화를 창조하고 월드컵 첫 출전국 세네갈과 ‘축구 불모지’ 미국이 당당히 8강에 진입한 것도 전술적 측면에서만 놓고 볼 때 철저한 압박축구를 구사한 덕택이었다.

대개 1점차 박빙의 승부로 펼쳐진 빅카드도 압박에 의해 희비가 엇갈렸다.

잉글랜드가 브라질과의 8강전에 1-0으로 앞서다 히바우두에게 내준 동점골은 브라질의 압박에 당한 것이었고, 한국의 돌풍을 잠재운 독일의 결승골도 하프라인 근처에서 김태영의 볼을 빼앗은 뒤 측면 돌파에 의해 곧바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브라질이 예상을 뒤엎고 결승에 오른 것 또한 특유의 개인기에 압박 위주의 수비 조직력을 가미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는 분석이다.

압박축구가 낳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수비 위주의 압박축구가 성행하면서 이번 월드컵은 이탈리아 대회 이후 가장 골이 터지지 않은 대회로 남았다.

전체 64경기 중 63경기에서 자책골 3골을 포함해 모두 159골, 한 경기 평균 2.52골이 나왔는데 이는 4년 전 프랑스대회(2.67골)와 94년 미국대회(2.71골)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더욱이 첨단과학 기술을 동원해 반발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공인구 ‘피버노바’의 등장과 이에 따른 대량 득점 예상을 고려하면 본선에서 드러난 압박의 강도와 그 효율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압박축구가 이처럼 한일월드컵의 화두에서 명제로 떠오르면서 세계 축구의 전반적인 플레이 스타일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전망이다. 이제 그라운드는 체력과 기술을 겸비해 공수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들의 경연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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