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도 다람살라 오지에서도 '톡톡… 클릭클릭…'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짙은 자홍색의 가사를 걸친 젊은 티벳 승려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곳은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 해발 1800m 고지대에 자리잡은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인터넷방 ‘맥레오드 간즈’. 인터넷에 연결된 여섯대의 PC가 나란히 놓여있다. 승려가 컴퓨터를 켜고 어딘가로 e메일을 보낸다. 잠깐 CF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맥레오드 간즈’는 본래 해발 500m 정도 차이가 나는 두 지역으로 나뉘어진 다람살라의 윗동네를 가리킨다. 인도 수상 네루가 망명한 달라이라마 앞에 인도 전도(全圖)를 펼쳐놓고 “한 곳을 택하라”고 말하자 달라이라마는 주저없이 중국내 티벳과 가깝고 기후도 비슷한 이곳을 택했다.

말이 호텔이지 여관이나 다름없는 숙소에 들어서자 티벳 여인이 두 손에 기다란 천을 받쳐들고 목에 걸어준다. ‘카타’라고 불리는 이 천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존경의 뜻으로 주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브래드 피트(하인리히 하러 역)가 달라이라마에게 카타를 드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카운터에서 열쇠를 건네받고 계단을 오른다. 옥상이 나타난다. 당혹스럽다. 로비로 내려와 다시 보니 1층은 한층 아래로, 2층은 두층 아래로 내려가도록 돼 있다. 방에 들어와 창밖을 내다본다. 호텔은 아득한 절벽에 서 있다.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아온 습관 때문일까. 달라이라마의 거처도 티벳 수도 라사의 포탈라궁처럼 절벽 위에 있다.

달라이라마의 거처를 찾아 ‘카타’를 드리고 친견한다. 선문답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그는 “신경학 심리학 등과 같은 현대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전자제품 수리를 좋아하고 불교 형이상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현대과학이 불교의 인식론과 명상법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매일 영국 BBC 월드뉴스를 듣는 달라이라마와 인터넷으로 e메일을 보내는 승려는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

돌마링 여자수도원에 들려 원생들이 불교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수학과 과학을 각각 4년씩 배운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다. 티벳어린이마을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한국인 소녀는 “한국의 불교는 ‘생활적’인데 티벳의 불교는 ‘과학적’”이라고 말한다.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환생’으로 믿으면서도 과학적일 수 있을까. 누군가 ‘환생여부와 환생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달라이라마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자신이 마지막 환생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적이 있다고 말해준다. 달라이라마는 실제 망명정부 헌법에 자신을 탄핵할 수 있는 조항을 넣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주술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다.

망명정부 공보실의 틴리 노르부는 “망명 티벳인 13만명 중 약 1만명이 살고 있는 다람살라에 하루 수백명의 외지인이 찾는다”고 말했다. 명상에 잠긴 색목황발(色目黃髮)의 서구인은 어느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최근 망명한 인민복차림의 티벳인 텀딘 체링은 ‘이곳이 너무 복잡하다’는 표정이다. 천길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있는 좁디좁은 산길도로는 하루종일 밀려드는 차와 사람으로 북새통이다. 동행한 여연(如然)스님은 “17년전 방문했을 때 평화의 기운이 감돌던 이곳이 시장터가 됐다”며 한탄한다. 도로를 확장하거나 차량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인도 주정부가 갖고 있다. 기부금으로 연명하는 망명정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뉴델리로 가는 버스에서 이념과 생활 양 측면에서 변화의 한가운데 선 망명티벳인을 생각한다. 이들이 히말라야 설산(雪山)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에서 묵은 전통에 갇혀 살고 있을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은 깨졌다. ‘인터넷 접속’으로 상징되는 열린 티벳 사회에 기대를 걸어본다.

<글·사진/다람살라(인도)〓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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