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韓-日협력시대]코리안리그 현장스케치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24분


<<한국과 일본의 축구교류는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대학까지 매우 다양하다. 잘 알려진 것은 대학정기전으로 고려대와 와세다대, 연세대와 게이오대, 서울대와 쓰쿠바대의 친선경기가 매년 열리고 있다. 지난 72년에 시작된 국가대표 정기전은 91년 중단됐으나 올 5월 도쿄에서 열리는 월드컵공동개최기념 한일전을 계기로 재개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대학선발 정기전의 부활도 검토되고 있다. 양국 축구교류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프로축구단의 버스는 낙서로 가득 메워져 있다. 「××× 좋아요」 「 파이팅」. 버스몸체는 물론 타이어에까지 온통 낙서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선수를 가진 팬들이 당당하게 낙서를 써 놓은 것이다. 『버스가 깨끗한 것은 인기가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팬들이 버스에 낙서하는 것을 막지 않으며 선수들도 낙서를 하곤 한다』고 구단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프로리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개방적이고 유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경기장에 늦게 온 팬이 트랙위를 어슬렁거리다 관중석에 올라간다.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고 있으나 경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상인들이 김밥이나 음료수를 팔며 휘젓고 다니는 관중석은 한국관중들이 가장 애용하는 응원도구인 막대풍선에서 나오는 「뿅 뿅」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경기가 끝나면 팬들은 거리낌없이 선수대기실까지 몰려든다. 학생들은 할인해서 1천원으로 입장하기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이때문에 한국프로축구는 팬과의 밀착 강도는 높지만 몇해 전에는 인기하락에 고민한 적도 있었다. 프로야구와 농구 등에 관중을 뺏겨 한경기 평균 관중이 3천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을 지냈던 金基福(김기복) 대전 시티즌감독은 『연고지역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팀이 나온다면 스타선수가 없어도 관중석은 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지역연고제를 프로축구에 적극 도입한 결과 96년에는 총 1백85만여명(공식경기 1백80경기)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94년 미국월드컵당시 한국대표팀 사령탑이었던 수원 삼성팀의 金浩(김호)감독은 『축구팬과 매스컴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것도 코칭스태프의 임무』라고 말했다. 서울과 인접한 수원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수원 삼성은 96년에 프로리그에 들어온 아홉번째 팀이다. 그만큼 팬들에게 팀을 알리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 이 신생팀은 창단 첫해부터 좋은 출발을 보였다. 전기리그에서 3위를 차지하고 후기리그에선 9승6무1패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그 비결의 일부는 좋은 선수를 받을수 있었던 드래프트제에 있었다. 한국의 경우 신인선수의 입단은 일본의 프로야구와 똑같은 드래프트로 결정된다. 그리고 새로 창단하는 팀에는 「우선 지명권」이 주어진다. 앞으로 18개까지 팀이 늘어날 것에 대비한 우대책이다. 95년은 신인풍작의 해로 수원 삼성은 많은 우수선수를 확보하는 행운도 누렸다. 전국 대회에서 4강에 올라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프로선수가 되는 길은 일본이상으로 힘들다. 울산 현대의 金湘勳(김상훈·23)은 전남 목포출신으로 어렸을 때는 생활이 어려웠다. 우수선수를 찾기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한 코치의 눈에 우연히 띄어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의 축구명문학교로 전학했다. 그는 『축구를 시작한 이상 도중하차하는 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뛰겠다』며 비장한 각오로 선수생활을 했다. 이제 한국에는 「신세대 선수」가 많이 늘어났다. 프로축구사상 처음으로 1백승 위업을 달성한 울산 현대의 高在旭(고재욱)감독은 『해외원정 경기때 식사걱정을 하는 것은 나이든 감독이나 코치뿐이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햄버거나 피자정도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여유와 엄격함을 적절히 사용하며 새로운 시대의 축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리요시 마사노리=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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