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함께 떠나요! 세계지리 여행]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술’…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발달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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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으로 생긴 최초의 술 ‘과일주’… 효모가 당분 분해하며 알코올 발생
메소포타미아 지역서 ‘맥주’ 탄생… 와인과 함께 유럽으로 퍼져 나가
이슬람 지역에서 증류 기술 개발… 우리나라서 ‘증류식 소주’로 발달

우리나라는 이슬람에서 전파된 증류주 ‘아락주’를 받아들여 전통 소주로 만들었다. 이후 1965년부터 희석주인 지금의 소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서 한 시민이 소주를 고르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는 이슬람에서 전파된 증류주 ‘아락주’를 받아들여 전통 소주로 만들었다. 이후 1965년부터 희석주인 지금의 소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서 한 시민이 소주를 고르고 있다. 뉴시스
21일은 ‘암 예방의 날’이었습니다. 암은 인간의 노화에 따라 돌연변이 세포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치병입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매년 25만 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물질 중에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도 있습니다. 그중 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입니다. 소량의 음주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역사적으로 술을 애용해 왔습니다. 기뻐서, 슬퍼서, 기념일이 있어서, 모임이 있어서 마시는 등 술에 대한 인류의 사랑은 각별합니다. 그런데 이 술의 발견과 발전에는 지리적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지리 이야기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 최초의 술은 아프리카에서 시작

오늘날 많은 인류학자는 인류의 최초 발원지로 아프리카 대륙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예나 지금이나 야생 동식물의 천국이었습니다. 높은 기온과 풍부한 강수량으로 각종 과일이 쉽게 자랐는데 과일은 ‘당분’이란 고효율의 에너지원을 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식량자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일 속의 풍부한 당분은 인간과 동물의 인기만 끈 것이 아니었습니다. 효모라고 불리는 곰팡이는 이 당분을 매우 좋아하는데, 과일에 비가 내리고 습해져 효모가 활동하기 쉬운 조건이 되면 효모는 과일 속의 당분을 분해(발효)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이 바로 알코올이었습니다.

최초의 술은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효모에 의해 발생한 알코올을 인류가 우연히 섭취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알코올은 인체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로 변하게 되고 이는 인간에게 몽롱한 상태를 유발합니다. 초기 인류에게 이런 몽롱한 상태, 즉 취기는 기분 좋게 다가왔고 인류는 효모가 발효한 자연적인 알코올을 찾아다니면서 최초의 술인 과일주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 곡물을 이용한 술의 시작

자연 상태의 과일을 구하기 힘들었던 지역에선 다른 방식으로 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청동기 문명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과일이 아닌 곡물을 주식 자원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리나 밀 등의 곡물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과일이 아닌 곡물을 이용한 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습니다. 오늘날 보리로 만든 맥주라고 하면 주로 유럽의 독일, 벨기에 등을 떠올리지만 사실 맥주의 원조는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건조한 기후로 다른 과일은 구하기 어렵지만 물이 적어도 잘 자라는 포도는 재배하기 쉬웠습니다. 따라서 포도를 기반으로 한 술인 와인 역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했습니다.

● 이슬람의 등장과 증류주의 탄생

프랑스 남부 아비뇽의 샤토 드 라 가르딘 와인. 뉴시스
프랑스 남부 아비뇽의 샤토 드 라 가르딘 와인. 뉴시스
7세기 초 메소포타미아 지역 부근의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교가 탄생하면서 변화가 생겨납니다. 이슬람교는 술을 불결한 것이라 여겨 금지했고 맥주와 와인 등은 종교적 금기가 없는 새로운 지역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서쪽의 유럽은 당시 기독교 세력이 강성했고, 기독교는 와인을 ‘예수의 피’라고 생각해 귀하게 여겼기에 와인은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또 중·북부 유럽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는 밀과 보리 농사에 적합했기에 밀과 보리를 기반으로 한 맥주 역시 유럽에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슬람의 이런 술에 대한 금기는 새로운 종류의 술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교가 발달한 건조 기후 지역은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증류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바닷물을 채취해 끓여 증류하며 순수한 물을 만드는 등의 방식입니다. 이런 기술은 이집트에서 넘어온 연금술과 결합해 더 발전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는 게 금지되자 술을 원료로 금 같은 다른 물질로 변화시켜 보는 각종 연금술적 시도가 유행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발효주를 끓여 더 순수한 술로 만든 증류주가 탄생하게 됩니다. 증류를 통해 만든 술에 이슬람 사람들은 ‘알-쿠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영어 단어 ‘알코올’의 기원이 됩니다. 술을 금기시킨 것이 오히려 새로운 술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한국의 술, 아락주에서 소주로 변화

이슬람 지역에서 탄생한 증류주는 몽골제국의 확장과 함께 동아시아로 전파되고 우리나라로까지 넘어옵니다. 아랍어 ‘알-쿠훌’은 몽골의 술 ‘아르히’로 변하고 이는 다시 우리나라의 ‘아락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증류주인 아락주는 다시 우리나라 전통 술인 ‘소주’로 진화합니다. 소주의 ‘소(燒)’자는 ‘불사를 소’입니다. 따라서 소주라는 이름 자체가 불로 끓여 증류한 술이란 의미입니다. 몽골을 통해 아랍의 증류 기술이 전해지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쌀을 발효시켜 만든 탁주나 그 탁주의 찌꺼기를 가라앉히고 떠오른 맑은 부분인 청주를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몽골을 통해 증류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증류주인 소주가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전통술로 유명한 안동소주나 이강주 등이 대표적인 소주입니다.

그런데 1965년 정부는 부족한 국내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을 반포합니다. 이에 따라 쌀로 만든 전통식 소주는 사라지고 카사바나 타피오카 등 저렴한 수입 곡물로 만든 순도 높은 알코올에 물을 희석하여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유행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지금 마시는 대중적 소주입니다.

술은 이처럼 지리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해왔습니다. 한 잔도 건강에 해로운 술이지만 그 지리적 변화를 알아보는 건 교양을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오늘 저녁 술 한잔 하려는 가족에게 술의 지리적 상식을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안민호 마포중 교사


#아프리카#술#과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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