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한우 출산 3번씩 확인하며 수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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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이동증명서 공개한 심정섭 씨
체격 월등하고 번식률 높은 한우
축우 이동증명서로 치밀하게 관리
1900년대 초부터 150만 마리 뺏고, 소가죽 군수물품 지정해 도축 막아

심정섭 씨가 28일 축우 이동증명서를 보여주며 일제의 한우 수탈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축우 이동증명서 뒷면에 
적힌 주의사항. 일제는 주의사항을 통해 한우를 철저하게 관리, 통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심정섭 씨가 28일 축우 이동증명서를 보여주며 일제의 한우 수탈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축우 이동증명서 뒷면에 적힌 주의사항. 일제는 주의사항을 통해 한우를 철저하게 관리, 통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가 조선 농민의 한우가 송아지를 출산했는지 3차례나 확인하는 등 치밀하게 수탈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서류가 발견됐다.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81·광주 북구)는 28일 본보에 축우(한우) 이동증명서를 처음 공개했다. 심 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백강 조경한 선생(1900∼1993)의 외손자다.

증명서는 가로 22.3cm, 세로 19.5cm 크기다. 증명서는 전남 보성군농회에서 1934년 11월 22일 웅치면 봉산리에 사는 농민 이모 씨에게 교부한 것으로, 이 씨의 한우가 32번이라고 적혀 있다.

일제는 축우 이동증명서를 통해 철저하게 한우를 관리했다. 증명서에는 이 씨의 한우가 암소이며 나이 1세, 털빛은 붉은색이라고 씌어 있다. 이 씨는 당시 시가 1500원인 한우를 1934년 7월에 구입해 다음 해 11월 팔았다. 특히 일제는 이 씨의 한우가 송아지를 낳았는지 3차례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축우 이동증명서 뒷면에는 주의사항 8개 항목이 기재돼 있다. 주의사항은 증명서를 한우 이동, 조사 등이 끝날 때까지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가축시장에 한우를 팔 때 증명서를 제출하고 개인 간 거래에서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어 한우를 도난당하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군농회, 면사무소, 경찰주재소(파출소)에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축우 이동증명서 없이 한우 매매를 하거나 증명서를 분실하면 벌금을 낸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한우 매매 신고 절차에 태만하거나 개인 매매 10일 이내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은 일제가 1900년대 초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한우 150만 마리, 소가죽 600만 마리 분량을 빼앗아 갔다고 설명했다. 일제는 1911년 한우에 대해 조사해 일본 소에 비해 체격 등이 월등하고 번식률이 높은 데다 발육이 좋다는 내용을 담은 조선의 한우란 책자를 배포했다.

이후 식용과 농경용으로 우수한 한우를 일본의 식량 문제, 농업생산량 증대의 해결책이 될 것으로 판단해 수탈했다.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 등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면서 한우 가죽은 군화, 함선 동력 벨트 등으로 사용했고 터무니없이 싼값으로 빼앗아갔다. 김성우 농촌진흥청 한우연구소 연구관은 “일제는 소가죽을 군수물품으로 지정해 한우를 도축하지 못하게 하는 등 비축물자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증명서를 발급한 보성군농회의 상부 조직은 조선농회다. 1910년 설립된 조선농회는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을 보조한 기관이다. 조선농회는 일제의 농업정책을 각 지방에서 실현하기 위한 핵심 조직체였다. 중앙농회 회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현재 총리), 도농회장은 도지사, 군농회장은 군수가 각각 담당했다. 한때 일제 고위관리 대신 이완용, 박영효가 중앙농회 회장을 맡아 친일 행각에 앞장섰다.

심 씨는 “일제가 중일전쟁 이후 식량 수탈 못지않게 농민들의 원성을 산 것은 한우 수탈이었다”며 “한우는 일본군에 고기, 가죽 원료로 사용됐고 1940년대 조선은 극심한 수탈로 소가 없어 사람이 목에 멍에를 걸고 논밭을 갈았다는 탄식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한우 이동증명서#한우 관리#주의사항#일본#한우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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