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검사 ‘총선 직행’…법조계 “재판·수사 공정했을까”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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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1월 11일 06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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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내 검찰 깃발이 대법원 건물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 News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내 검찰 깃발이 대법원 건물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 News1
4·10 총선 공직자 사퇴 시한을 앞두고 현직 검사와 판사들의 사표가 이어지면서 법조계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소한 현직 판검사의 ‘총선 직행’은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 요소가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상범 의정부지법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34기)가 전날 법복을 벗었다. 심재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52·30기)도 이날 사직이 확정됐다.

통상 대법원은 정기인사에 맞춰 사표를 한 번에 수리하지만 총선 출마 의사자에 대해서는 사퇴 마감 시한 이전에도 받아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의 부장판사는 “정기 인사를 앞두고 급하게 사표가 수리된 것은 출마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 등 현직 검사들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고 출마를 준비하거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들은 재판이나 감찰을 받고 있어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News1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News1
그러나 22대 총선에 출마하는 공직자는 선거 90일 전인 이날까지만 사퇴하면 돼 배지 도전에는 지장이 없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4월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당선 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공무원도 출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사직 이후 일정 기간을 두고 총선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곧장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현직 판검사의 ‘총선 직행’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사퇴한 법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법원을 떠나 다른 일을 하다가 출마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도 “선진사법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어제까지 재판하다가 내일부터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사법부가 아직 선진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닌 만큼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을 다뤄왔던 사람들이 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냐”며 “그동안 계속 있었던 일”이라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검사 신분일 때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사표 수리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정치 운동에 관여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검사윤리강령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총선 직전에도 현직 법관들이 잇따라 사퇴하며 총선에 뛰어들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수원지법 부장판사)과 최기상 민주당 의원(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은 2020년 1월 사표를 제출한 뒤 민주당에 입당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당시 광주지법 부장판사)도 공직자 사퇴 시한을 앞두고 사직서를 냈다.

총선을 앞두고 현직 법관과 검사가 출사표를 던지는 사태가 반복되자 출마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검찰 출신의 정치권 진출은 자신의 출세와 권력 추구를 위해 검찰을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며 “앞으로 판검사 퇴직자는 최소 5년 이상 선출직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의원 등은 2020년 현직 검사가 퇴직한 뒤 1년 간 공직후보자로 출마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사·기소에 대한 정치성 문제가 제기돼 수사·기소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인데 현재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같은해 김진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법관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 관련 사건을 맡았던 판사나 검사가 사직후 곧장 출마하면 당연히 공정성에 의심을 받을 것”이라며 “총선 직전에 사퇴할 때는 보통 공천이 약속된 경우가 많을 텐데 사전 조율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정치적 중립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검사와 판사처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집단은 일반공무원과 똑같이 보는 것이 맞지 않다”며 “일반공무원은 총선 전 90일에 사퇴한다고 해도, 수사와 재판을 맡았던 사람들은 최소한 1년 전에 그만두게끔 법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변호사는 “어떤 일이든지 법률로 규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법률로 제한하면 직업선택의 자유 등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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