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치료 공백 살펴야”

  • 뉴시스
  • 입력 2023년 8월 2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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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성폭행' 피의자, 직업 없이 PC방 전전
정신질환자 고립…치료 공백 속 '묻지마 범죄'로
전문가 "사회적 고립·정신질환 방치해서는 안돼"

‘신림동 둘레길 성폭행’ 피의자 등 최근 강력 사건 가해자들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음에도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고립 청년’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치안 공백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치료 공백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강간살인 혐의를 받는 최모(30)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자택과 인근 PC방 등을 전전하며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울증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치료를 받지 않았고, 사회적 교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는 지난 17일 오전 11시40분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산속 공원 둘레길 등산로에서 양손에 너클을 낀 채 30대 여성 A씨를 때리고 성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지난 19일 오후 3시40분께 끝내 숨졌다.

이를 두고 최씨와 같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이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경우, 치료 공백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를 낳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모든 ‘은둔형 외톨이’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립된 이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힘 과시·정복 욕구 등을 사회적 교류 속에서 풀지 못해 옳지 못한 방향으로 해소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5월 발행한 ‘조현병 환자의 불특정인 대상 공격행위 특성 등’ 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겪는 상태에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절반 이상이 동거인이 없는 ‘고립’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 등 흉악범죄 67건 중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격하는 집단은 29건이었으며, 이 중 15건(51.7%)이 현재 혼자서 생활하는 경우였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까지도 고립돼 치료가 끊기면, 단순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넘어 위험한 경우 ‘아무나 걸려라’라는 식의 묻지마 범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2019년 ‘묻지마 흉기·방화 살인’을 저지른 안인득(46)의 경우, 정신 질환을 앓았지만 집에서 홀로 은둔 생활을 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고립 청년’ 문제를 범죄와 직접적으로 엮는 것은 위험하지만, 관련 사건들이 발생하는 만큼 사회적 제도를 통해 범죄 발생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씨가 은둔형 생활에 빠지게 된 환경 요인 등을 파악해야 하고, 무엇이 범행의 ‘트리거’ 역할로 작용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사회적 고립·정신질환 등의 여러 문제를 방치하면 계속 끔찍한 괴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안인득 사건을 심리한 1심도 “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비극이 일어난 것에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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