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대사의 현장… 화수·화평동의 역사 돌아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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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대규모 공장 건립
광복 후에 경인공업지대로 발전
재개발 앞두고 동네 기록 모아 전시
시립박물관서 10월 15일까지 열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 특별전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 특별전은 10월 15일까지 열린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 특별전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 특별전은 10월 15일까지 열린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인천 동구에 있는 ‘화수·화평동’은 인천의 근대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인천항이 개항하기 1년 전인 1882년 5월 22일(고종 19년)에 화수동에서 한국과 미국이 처음으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한 역사적 장소다.

일제강점기 동구 일대에는 공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정미소와 성냥공장을 비롯해 조선기계제작소 같은 공장이 수두룩했다. 광복 이후에는 경인공업지대로 발전해 인천 산업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이처럼 화수·화평동은 노동자들이 개항기부터 산업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면서 공장지대의 배후 마을이 된다.

화수동은 부두로서도 유명했다. 6·25전쟁으로 피란을 온 실향민이 정착하며 활기를 띤 자연항으로, 1970년대 연안부두가 건설되기 전까지 화수부두로 거의 모든 고깃배가 들어올 정도였다. 특히 연평도와 백령도 근해에서 잡은 생선의 집하 부두였으며 새우젓 전용선이 입항할 정도로 새우젓 시장으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인천 돈의 절반이 모이는 곳’이라는 등의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여객선과 어선들이 연안부두로 빠져나가면서 화수부두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인천시립박물관이 2층 기획전시실에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 특별전을 열고 있다. 화수·화평동이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근대사를 간직한 이 동네를 앞으로 기억으로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지역 유산과 민속자료를 조사해 왔던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과 함께 과거의 기록을 찾아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별전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 ‘무네미에서 벌말까지’에서는 인천항이 개항한 뒤 일자리를 구하러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마을을 이뤄 살게 되면서 무네미, 화도동, 벌말, 곶말, 새말 등으로 나뉘어 가는 과정을 다룬다.

2부 ‘공장이 들어서다’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살던 마을인 동구 일대에 각종 혐오시설과 함께 공장이 건설된 상황을 살펴본다. 처음에는 정미소와 양조업 등 경공업 공장이 주를 이뤘지만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송현동, 화수동, 만석동 해안가 매립지에 군수품을 생산하는 중공업 공장이 건설된다. 항만과 철도, 변전소 등 인프라와 함께 노동자를 위한 사택도 들어선다. 비록 일제가 전쟁을 위해 건설한 공장이었지만 광복 이후에는 우리 힘으로 재건해 기계를 다시 돌리고, 동구의 공장 시설은 인천 산업화의 기틀이 된다.

3부 ‘노동자 수평 씨의 하루’에서는 1970년대에 전기회사에 다니던 노동자 ‘수평’이라는 가상 인물이 화수·화평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양진채의 글로 전시를 풀어내 당시 이 동네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신진여인숙, 양화점, 솜틀집, 냉면집 등 서민들의 삶이 묻어 있는 동네 곳곳의 모습을 재현했다.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인천의 역사가 녹아 있는 옛 동네의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인천#근대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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