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 와”…관광객에 질린 유럽, 인증샷 금지에 관광세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4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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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에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예약하려니 이달 말까지 매진이었어요. 직접 창구에서 표를 구하려고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갑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네덜란드 유학생 술탄 카미야스바예브 씨는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는데 못 봐서 아쉽다”며 휴가철이 지난 뒤 다시 노려보겠다고 했다. 미국인 관광객 앨런 블록 씨는 “파리행(行) 비행기표를 1년 전 끊었고, 박물관 입장권은 6개월 전 예약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관광 수요가 분출되며 여름 휴가철을 맞은 프랑스 등 유럽에 관광객이 넘치고 있다. 유명 관광지들은 입장을 제한하고 ‘관광세’를 도입하는 등 밀려드는 인파를 밀어낼 묘안을 짜내고 있다.

● 방문객 제한, ‘관광세’ 부여도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에 따르면 프랑스 호텔 이용자 수는 올 1분기(1~3월) 426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9% 증가했다. 관광객들의 돈 씀씀이도 커졌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엔 관광객 1인당 하루 평균 카드 결제액이 356달러(약 45만 원)였지만 올 1~4월엔 평균 390달러(약 50만 원)였다.

독일 숙박예약 업체 홀리두에 따르면 유럽에서 거주민 1인당 관광객 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2명), 아일랜드 더블린(11명), 에스토니아 탈린(10명), 파리(9명) 순이었다. 거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것이다. 스페인관광청에 따르면 올 1~5월 스페인을 찾은 한국인도16만7202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한 해 한국인 방문객의 92.7% 수준이다.

관광객이 늘면 관광 수익이 늘어 당국이 반길 법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인파가 몰리며 관광의 질이 떨어지고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생겨나는 ‘오버 투어리즘’ 현상에 고민이 크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익숙해진 한적한 관광지를 선호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오히려 북적거리는 유명 관광지로 몰리고 있다”며 당황한 지역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루브르 박물관은 하루 방문 인원을 최근 4만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제한했다. 안전사고를 막고 쾌적한 관람을 돕기 위해서다. 건물 색상이 알록달록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파리 크레미유 거리에는 일찍이 ‘사진 및 영상 촬영을 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세워졌다. 주민들이 “관광객들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며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발렌시아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포르투갈의 유명 어촌 마을 올량은 조만간 최대 2유로(약 3000원)의 관광세를 부과한다. 한국 인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인 스위스 이젤발트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K-드라마 팬들이 몰리자 최근 지방정부는 5스위스프랑(약 7000원)의 통행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해안 마을 포르토피노에서도 석 달 전부터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 “에어비앤비 신규 허가 금지”

급증하는 관광객에 에어비앤비 등 숙박시설까지 난립하자 당국이 신규 허가를 금하는 도시도 생겨났다. 도심 주택들을 숙박시설이 차지해 실수요자들이 집 찾기가 힘들어지고 집값도 오르기 때문이다. 파리시는 올 5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역에서 신규 에어비앤비 허가를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두오모 성당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렌체도 역사지구 내 신규 단기주택 임대를 금지했다고 지난달 현지 일간지 ‘라레푸블리카’가 전했다.

앞으로 유럽 유명 관광지에선 각종 입장권과 숙박 장소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파리의 여행사 ‘임팩트’ 직원 베베르리 페브리 씨는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관광지가 훼손되지 않게 사람들을 많이 받지 않으려는 곳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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