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보단 전문직”… 공시생에 직장인도 리트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4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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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 응시자 수 최고치 경신

“이제 로스쿨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어요.”

4일 수도권 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관계자는 “최근 인문계 뿐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까지 대거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리트)에 응시한 지원자는 1만7360명으로 지난해(1만4620명)보다 18.7%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65%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응시율이 90% 안팎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23일 치러지는 리트 응시자 수도 1만5000명을 늘어 지난해(1만3193명)보다 많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트 응시자가 늘어난 것을 두고 최근 낮은 급여 등을 이유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식자 대학생들이 로스쿨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직장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공무원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낮은 급여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이라며 “고용 불안을 겪지 않는 동시에 높은 연봉을 받길 원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전문직이 되기 위해 로스쿨로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는 높아지고 경기는 둔화되니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시험에 투자한 시간과 공무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을 비교해 보니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학원가에서 만난 조모 씨(26)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조 씨는 “올해까지 3년 동안 준비해온 국가공무원 5급 행정직 공채(행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불안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선 공무원증보다 전문직 자격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리트 지원자 5년 만에 65% 늘어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22.4.22. 뉴스1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22.4.22. 뉴스1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리트 응시자 수는 매년 늘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로스쿨 정원이 2100명 가량으로 고정돼 있는데 응시자 수가 늘면서 경쟁률도 매년 높아져 지난해는 응시자 중 합격률이 17%까지 떨어졌다.

응시자가 늘어난 것은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 대학생과 공시생, 직장인 등을 가리지 않고 로스쿨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줄면서 행정고시나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 등을 준비했던 공시생들이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매년 1만 명대를 기록했던 행정고시 응시자 수는 2021년 1만2038명, 지난해 1만495명에 이어 올해 9044명까지 줄며 2년 만에 25%가까이 감소했다.

광주에서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박모 씨(28)는 지난달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로스쿨 입시 전문 학원에 등록했다. 박 씨는 “올해부터 지방 로스쿨은 15%를 지역 인재로 뽑는 만큼 단기간 바짝 공부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일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중앙 부처 상당수가 세종시 등 비수도권에 자리잡은 것도 우수 인재의 공직 지원이 줄어드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리트 시험 준비를 시작한 최모 씨(31)는 “학원비, 교재비에 월 200만 원을 쓰는데 이렇게 어렵게 합격하더라도 공무원 월급이 200만, 300만 원 남짓이라는 걸 생각하니 대안이 필요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직장인 “퇴근 후 스터디 모임”
최근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퇴근 후 스터디모임을 꾸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올 1월부터 직장인 3명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주 2회 리트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는 박모 씨(30)는 “암기 과목도 행정고시만큼 많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히면 상대적으로 합격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 노후에 대비하려 한다”고 했다.

학원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문직 자격증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리트 학원 관계자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면서 학원에 등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로스쿨 경쟁률이 높아지자 대학교 2, 3학년부터 리트를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있어 수요는 꾸준히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로스쿨 정원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1700명 가량)는 안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작정 로스쿨 준비를 하는 게 답이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로스쿨에 합격하더라도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들이 다 한다고 로스쿨을 준비하기 전에 본인의 적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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