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신고 잇따를 때… 용산서장 식사중, 서울청 112책임자는 부재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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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태원 참사 발생 1시간전
경찰 간부들 직무소홀 드러나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하기 약 1시간 전, 위급함을 알리는 112 신고가 이어지고 있을 때 이임재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외부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 및 대응조치를 총괄해야 할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류미진 상황관리관(인사교육과장)이 참사 발생 후 1시간 반 가까이 자리를 비운 채 보고를 받지도, 하지도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3일 경찰청은 이 서장과 류 관리관이 업무를 태만하게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두 사람을 직위해제했다. 또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서장은 지난달 29일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 현장을 관리하다 오후 8시 반경 집회가 끝나자 오후 9시경 용산서 경비과장 등 간부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현장 인근에 인파가 운집해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라는 신고가 접수된 시점이었다. 이 서장이 용산서 상황실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건 이날 오후 9시 반이 지나서였고, 참사 현장 인근에 도착한 건 사고 발생 5분 후인 오후 10시 20분경이었다.

참사 당시 서울청 112상황실 책임자였던 류 관리관이 근무수칙상 자리를 지켜야 하는 서울청 5층 상황실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10층)에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류 관리관은 이날 오후 11시 39분경에야 112상황팀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상황실로 복귀했다.

이 서장은 현장에 도착한 지 1시간 16분이 지난 이날 11시 36분에야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참사 사실을 보고했다. 이 서장과 함께 김 청장에게 보고 책임이 있었던 류 관리관은 이 시점에도 참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서울 치안의 총책임자로 참사 당시 자택에 있던 김 청장은 이 서장의 전화를 한 차례 놓쳤다가 2분 후 전화를 받아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지만, 동아일보 취재 결과 실제 관련 보고 전화를 놓친 횟수는 3차례였다. 김 청장은 오후 11시 34분경 3차례에 걸쳐 연달아 걸려 온 이 서장의 보고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 11시 36분경 온 4번째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찰을 통해 김 청장이 오후 11시 34분 이 서장의 보고 전화를 한 차례 놓치기 전에도 보고 연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서울청장, 참사 2시간뒤 현장에… 경찰청장은 4시간뒤 지휘부 회의



보고-지휘-소통 문제… 지휘부 공백
서울청장, 전화 3번 놓쳐
경찰, 참사 2시간전 “기동대 보내라”
“집회 대응탓 못뺀다” 요청 거부당해



대통령보다 경찰 지휘부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실을 늦게 파악하는 등 참사 전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서울 이태원 지역을 담당하는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은 ‘압사가 우려된다’는 신고가 빗발치던 시기에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2시간 10분 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4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첫 지휘부 회의를 소집했다. 이를 두고 경찰 내 보고와 지휘, 소통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치안 책임자들 참사에 제대로 대응 못 해
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9일 오후 8시 반경 이임재 서장은 종료된 집회시위 현장 관리를 마치고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인파가 본격적으로 몰리던 시점이었다. 이어 오후 9시경에는 용산서 경비과장 등과 함께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경찰청이 공개한 112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이날 이미 오후 9시 전에 압사를 우려하는 신고 4건이 이태원파출소에 접수된 상태였다. 이 서장이 식사를 하던 오후 9시부터 10분 동안 4건이 추가로 접수되며 위험 징후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 서장은 오후 9시 반경에야 용산서 상황실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참사가 발생한 5분 후인 오후 10시 20분에야 이태원역 인근에 도착해 현장 대응을 했다.

김광호 청장은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집회 관리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오후 9시경 집회가 끝나자 그는 서울 강남구 자택으로 퇴근했다.

김 청장이 사고 발생을 보고하는 이 서장의 전화를 받은 것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21분이 지난 오후 11시 36분이었다. 이에 앞서 김 청장은 2차례 이상 관련 보고 전화를 놓쳤다고 한다. 통상 서장급 이상의 관용차량, 관사에는 상시 무전 대기가 가능한 무전장비가 설치돼 있으나 김 청장은 관사를 쓰지 않고 있었다. 경찰청은 이 서장의 서울청장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감찰을 진행 중이다. 보고가 늦어진 데다 이동에도 시간이 걸리다 보니 김 청장이 현장에 도착한 건 사고 발생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0시 25분이었다.

참사 당일 윤 청장은 자택에 머물다 30일 0시 14분에 처음으로 경찰청 상황실로부터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참사 발생 후 1시간 59분 후였다. 그가 경찰청 지휘부를 소집한 것은 사고 발생 4시간 15분가량이 지난 30일 오전 2시 30분이었다.
○ “집회 관리” 참사 전 기동대 요청 거부
참사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기회는 사전에 여러 차례 있었다.

참사 당일 오후 7시 반∼8시경 이태원 현장에 있던 용산서 소속 경찰관이 현장 인파 통제를 위해 용산서 교통과에 “교통기동대라도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교통기동대 20명은 인근 집회가 끝난 뒤 이태원 현장 질서 관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장 상황이 심상치 않자 먼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교통기동대 지원을 요청한 시점은 사고 발생 2시간여 전으로 인파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용산서 교통과 담당자는 “집회 대응을 하고 있어 (교통기동대를) 빼기가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교통기동대 20명은 집회 대응을 마친 뒤 오후 9시 반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이미 인파가 들이차 사고를 막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이어 사고 발생 1시간 15분 후인 오후 11시 반에야 서울경찰청에서 대규모 기동대가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참사가 경찰 지휘관들의 대응 부실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대통령실보다 경찰 지휘부가 사안을 늦게 알 정도로 보고 체계가 붕괴됐고, 지휘관들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에 너무 많은 계급, 기관 간 상하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보고 문화도 경직돼 있어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서울청장#치안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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