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모으기 30여년…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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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 ‘처음책방’ 개점한 김기태 세명대 교수

‘처음책방’ 외부 모습.
‘처음책방’ 외부 모습.
“초판본이나 창간호와 인연이 얽힌 많은 분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대 후문에 자리 잡은 서점인 ‘처음책방’. 1일부터 문을 연 이곳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책들을 모아놓은 서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설책이나 시집, 산문집 등 단행본의 ‘초판 1쇄본’과 신문, 잡지, 사보, 기관지, 학술지 같은 정기간행물의 ‘창간호’ 등 세상에 처음 나온 다양한 인쇄물을 모아 놓은 공간이다. 132m² 크기의 책방에는 10만 권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단행본 초판본과 정기간행물 창간호를 한군데 모은 국내 유일의 전문서점 ‘처음책방’을 만든 김기태 교수가 책을 살펴보고 있다. 세명대 제공
단행본 초판본과 정기간행물 창간호를 한군데 모은 국내 유일의 전문서점 ‘처음책방’을 만든 김기태 교수가 책을 살펴보고 있다. 세명대 제공
이 서점을 연 김기태 교수(59·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는 “초판본이나 창간호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 편집자, 필자, 독자 등의 추억을 소환해 그 시절을 돌아보고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곳을 지향하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처음 서적’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와 출판사에 근무하던 1980년대 말이다. 그는 “첫 직장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초판본이나 창간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기획 때와 달리 발행된 결과물에 오·탈자 같은 작은 문제에서부터 중대한 오류가 남은 상태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판 1쇄 또는 창간호로 ‘유명을 달리하는’ 책들이 부지기수였다. 김 교수는 “간신히 발간돼도 2쇄 또는 2호부터 오류가 사라지고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등 시류에 영합하는 양상이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며 초판본과 창간호의 중요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출판사와 기획사 등을 거쳐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출판잡지학과, 신문방송학과)를 마친 그는 시간강사로 전국을 누볐고 시간 나는 틈틈이 지역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책 수집에 나섰다. 2001년 3월 세명대 교수로 부임한 뒤 수집열은 더욱 높아졌다. 부산이나 광주같이 먼 곳에 좋은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상태가 좋지 않거나 가격이 맞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뜻하지 않게 보물(?)을 발견하고 표정 관리 끝에 싼값에 구입한 일 등 수집 에피소드도 많다.

김 교수는 “1976년 창간된 ‘뿌리깊은 나무’가 1980년 통권 53호를 끝으로 폐간돼 전권을 모으려고 10년이 넘게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소장자를 찾아 한꺼번에 구입하는 행운을 얻은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원로 언론인 김호준 선생(전 신문발전위원장)의 소장본 기증, 작고한 권오중 선생(전 한국잡지협회 사무국장)이 잡지 창간호 수백 종을 남겨준 일, 많은 지인들이 소문을 듣고 책을 모아 준 일 등 감사한 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30여 년간 모은 서적 가운데 단행본에서는 최인훈의 ‘광장’ 초판본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1961년 정향사가 발행한 이 책 초판본을 구했는데 표지를 감싼 재킷이 없어 안타까웠다. 다행히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재킷까지 잘 보존된 초판본을 구했다”고 말했다. 또 박목월의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 김윤식의 1956년판 ‘영랑시선’, 1970년 여성동아 별책부록으로 나온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裸木)’ 등도 애착물로 꼽았다.

처음책방은 전시와 판매, 매입 등의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출판이나 문학 역사에 의미가 있는 책들을 기간을 정해 특별전 형식으로 선보이고, 나머지 책들은 적당한 가격을 정해 판매할 것”이라며 “초판본과 창간호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만큼 의미 있는 책들을 가져오면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점에서는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유명 작가의 필체를 엿보다―저자 서명본’, ‘그 시절의 재미를 추억하다―만화잡지 창간호’ 등 2개의 개점 기념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회 기간 판매도 병행한다. 서점 운영은 김 교수의 아내가 맡기로 했다.

김 교수는 처음책방이 독서와 읽기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부모와 조부모가 체험했던 독서의 소중한 기억을 간접 경험하고, 세상에 흩어진 초판본과 창간호가 하릴없이 소멸되기 전에 이곳으로 모여 제대로 임자를 찾아가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처음책방#김기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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