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법정출석 증언땐 2차 피해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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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면 영상 녹화 진술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판사들이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헌재 결정에 따른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는 10일 오후 7시부터 약 3시간 30분 동안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 녹화 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는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아동) 부소장, 조현주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장옥선 진술조력인, 김동현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판사, 오선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 조정민 부산지법 판사 등이 참가했다. 활동가와 일반 시민 등을 포함한 530여 명도 토론회에 접속해 채팅창을 통해 의견을 나눴다.

조현주 변호사는 “반대신문 중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질문을 하거나 반복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피고인의 변호인이 어린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다그치는 태도를 보이가도 한다”며 “법정 증언 후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말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과 함께 수사 초기 증거보전절차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오정희 검사는 “수사 초기에 증거보전절차를 시행할 경우 수사 진행 상황이 피의자에게 노출돼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피고인이 방어권을 주장하는 경우 재차 피해자 증인신문이 허가될 수 있어 반복진술 위험이 해소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현행 제도 하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방안을 적극 이행하는 동시에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보완을 촉구했다. 박 판사는 “추후 입법 등을 통해 최소한 13세 미만 피해자를 위한 증거능력 인정 특례나 재판장이 증인신문을 대신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재판 이전에 제 3자인 전문조사관이 미성년 피해자를 면담해 조사하고 피해자가 법정에 서지 않도록 하는 ‘노르딕 모델’의 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연구회는 “현재 미성년 피해자 관련 수사 및 재판제도가 피해자 보호에 충분하지 않고 개선을 위해 지속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여러 참가자들이 헌재가 대안으로 제시한 기존 제도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 인력과 예산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에서 다루지 못한 추가 쟁점이나 채팅창 등에서 이뤄진 토론 등은 이후 연구회 후속 세미나에서 검토하고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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