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환 교수의 新국부론]<최종회·7>올바르게 교육 받은 지도자가 정의로운 국가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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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국가다. 1958년 태어난 나는 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해왔다. 미국의 원조로 만든 밀가루 빵을 먹으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민주화운동으로 휴교와 휴강이 많았던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구미(歐美) 대학 교과서를 복사해 공부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 조선해양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해왔다. 세계 1등 조선해양 산업을 일구는 데 작은 힘을 보탰다. 구미학자들로부터 배운 기술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즐거움도 맛봤다. 지난 4년간 대학 총장으로서 대학경영의 경험을 쌓는 영광의 시간도 가졌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많은 나의 삶이다.

중진국 덫에 걸린 대한민국을 구할 변즉통구(變則通久)

대한민국은 10년도 넘게 중진국 덫에 걸려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넘겼지만 선진국으로 진입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역 간 불균형과 양극화 심화,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 젊은 세대의 좌절 등 퇴보를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대학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자는 신국부론을 제기했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발표한 국부론의 핵심 중 하나는 “국가 부(富)의 원천은 물질보다 노동, 특히 노동력의 개선”이라고 했다. 당시 산업혁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노동력 개선의 혁신은 ‘분업’이었다. 두 번째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안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유자본주의경제의 기본 틀이다. 수정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 등으로의 변천은 있어 왔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4차산업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변즉통구(變則通久·변해야 통하고 오래간다)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 5만 불 시대로 가기 위한 노동력의 개선, 즉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혁신은 교육으로 가능하다. 교육혁명을 통해 나라를 변화시켜 새로운 부를 창출하자고 주장한 이유다.

플라톤을 불러 국가를 다시 생각한다.

힘들게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한 1960∼70년대 학번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끌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위대한 전사(戰士)들이었다. 이 전사들이 보수와 진보 혹은 도서관파와 운동권파로 양분돼 극심하게 다투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에 지도자들의 내로남불식 언행은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뜻인 아시타비(我是他非)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된 것은 당연하다. 경제성장 없는 민주화가 없고, 민주화 없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국가의 작동 원리가 아닌가. 2400여 년 전 플라톤이 쓴 ‘국가’를 끄집어내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국가’의 핵심 내용은 “국가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주는 것, 이를 위해서 국가는 정의로운 사회여야 한다”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자기 몫을 다 할 수 있는 기회, 즉 개인의 적성을 살려서 국가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라고 했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상국가를 구성하기 위한 다음의 5가지의 요소를 강조했다.

① 국가는 지배 계급인 수호자(통치자와 조력자)와 피지배 계급인 생산자로 구성되고, 이들은 세습이 아닌 자질에 의해 결정
② 국가 분열의 주요 원인인 빈부격차의 최소화
③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통치자, 권력자가 제일 가난해야 함
④ 국가 통치를 위한 수호자 집단의 엄격한 교육(철학, 체육, 수학, 예능 등)
⑤ 일생의 교육 과정을 거쳐 통치자 선발

이상적인 국가의 지도자상


플라톤이 추구한 통치자는 이익이나 명예를 좇지 않고 지혜를 사랑하는 철인(哲人)이다. 철인은 실천적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다양한 실무 체험을 거치면서 현상 너머의 실재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자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철저한 교육과 체력단련을 통해 관찰되면서 길러진 엘리트 중에서 선발돼야 한다고 했다. 2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요구되는 완벽한 지도자상이 아닌가. 플라톤은 훌륭한 국가체제는 철인정체가 첫 번째고 명예정체(스파르타식 국가), 과두정체(소수의 부자들이 지배하는 국가), 민주정체, 참주정체 순으로 보았다. 민주국가를 끝에서 두 번째로 꼽은 것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신봉자들에 의해 사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다수결로 운영되는 민주주의의 결함은 플라톤 이후에도 나타나곤 했다.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히틀러가 이끈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4차 산업시대의 보이지 않는 손, 아이디어 성과주의
플라톤의 ‘국가’는 정치철학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이끌 현인(賢人) 지도자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의 실천교육학이다. IT(정보기술)의 발달로 모든 지식이 공유되는 플랫폼 사회가 되었다. 개인의 머릿속 지식은 더 이상의 지식이 아니다. FAANG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기업들의 실적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들 덕택에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공황은 오지 않았다. 다국적기업의 협력으로 코로나19 백신도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개발돼 접종이 시작됐다. 지식의 유효 기간도 어느 때보다 짧아졌다. 다양한 정보공유를 통해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사업의 승패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의사결정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창업 후 40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로 성장시킨 레이 달리오 원칙(Principles, 2018년 한국어 출판)을 주목한다. 26년 동안 23년 수익을 냈고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그 기간에도 수익을 낸 인생과 기업에 관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기업경영 원칙 3개는 아이디어 성과주의 문화 구축,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재 채용과 교육, 엄격한 평가를 통한 조직 관리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결정되는 의사결정 시스템인 아이디어 성과주의는 ‘극단적 진실+극단적 투명성+신뢰도 가중치’이다. 모든 문제, 약점과 정보를 공유해 업무 신뢰도의 가중치(업적에 따라 구성원의 동의로 결정)를 반영한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다수결 결정이라는 민주주의 정의에는 위배되나 두 결정이 다를 때는 신뢰도 가중치 결정이 항상 옳았다는 것이 달리오의 원칙이다. 이것이 4차산업 플랫폼 시대에 필요한 노동력의 조건이다. 달리오가 제시한 3개의 기업 원칙은 플라톤이 주장한 ‘국가의 정의’와 일치한다. 또한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이기도 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생명체는 30억 년 동안 자연 선택(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과정을 거쳐 진화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교육학습을 통해 허구를 믿어 이타주의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국가이다. 생명체인 국가도 보이지 않는 손인 자연 선택으로 번영과 소멸의 길로 왔다. 진리를 탐구하지 않은 자는 진리를 알 수 없다. 정의롭게 살지 않은 자는 결코 정의로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정의로운 국가는 올바른 교육을 받고 바른 삶을 실천한 테크노크라트가 만들 수 있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 전 부산대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에듀플러스#교육#전호환#총장#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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