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2년차, 가방 대신 태블릿…교실 대신 ‘ZOOM’ 등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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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 [코로나 사피엔스]<1> 학교가 달라진다
온라인 수업 일부는 출석체크만…친구 못만나는 학생들 소외감도
과목별 원격수업 플랫폼 만들면…학교간 학력격차 줄일수 있어
교사는 학생 개인별 상담에 집중…즉각적 피드백, 학생 만족도 높아

코로나19는 등교와 출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집어삼켰다. 생필품을 사고 외식을 하는 소비활동도 바뀌었다. 대형 콘서트장에서 ‘떼창’을 즐기는 게 언제 가능할지 모른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2년 차, 책가방 대신 태블릿PC를 찾는 학생과 ‘줌(ZOOM) 소회의실’로 모이는 직장인의 모습이 일상이 될 것이다. 본격적인 ‘코로나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화성시 숲속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소리가 ‘음소거’하듯 멈췄다. 19개 작은 화면 속에서 몇몇 아이들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선생님이 유치원에 포토존 예쁘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따 각자 와서 졸업장 받자.”

이날 졸업식은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ZOOM)’으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태어나 첫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경험했다. 아마 3월 초등학교 입학식도 온라인으로 진행될 것이다. 또 1학기 수업도 등교와 원격이 번갈아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을 통해 등교하고 수업하는, 바로 ‘줌 세대’의 학교생활이다.

○ 우왕좌왕 원격수업이 낳은 학력 격차

학부모 김미영(가명) 씨의 두 자녀는 각각 국제중과 공립중에 다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김 씨는 두 자녀를 보며 학력 격차가 커지는 이유를 확인했다. 국제중에 다니는 아이는 원격수업 기간에도 대면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 안에서도 학교생활을 똑같이 했다. 1교시부터 방과 후 클라리넷 수업까지 모두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됐다. 공립중에 재학 중인 아이는 45분짜리 수업을 10분 만에 끝냈다. 이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붙잡고 게임을 하는 게 일과였다. 교사는 조례와 종례 때 출석을 체크하고 과제만 확인했다. 지켜보는 김 씨의 속이 터졌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례 없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며 상당수 학교의 원격수업은 ‘출석체크’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문제는 원격수업의 수준이 교사나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학력 격차가 갈수록 커진 것이다.

팬데믹 2년 차인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등교수업이 늘어도 ‘학교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넘어서 ‘학교 혐오’ 현상까지 우려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원격수업 때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며 혼자 공부한 학생은 등교가 시간 낭비라고 느끼고, 게임만 하던 학생은 억지로 교실에 앉아야 해 학교가 싫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모든 교사가 원격수업에 매달릴 필요 없어

전문가들은 모든 교사가 원격수업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도 맞추기식 원격수업이 의미 없다는 건 이미 확인됐다. 줌 세대에게는 기존 공교육이 할 수 없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초중고교 각 학년 및 과목에서 가장 수준 높은 원격수업 콘텐츠를 모은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전국에서 고교 수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교사 100명에게 강의를 맡기고 모든 학생이 공유하는 것이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교육부가 의지를 갖고 약간의 인센티브만 준다면 참여할 교사가 많아 금방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면 일선 교사는 원격수업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 대신 학생 개인별 맞춤형 수업이나 상담에 집중해야 한다. 줌 세대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희정 대구 수성고 교사는 “지난해 수학 교사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학생들이 원격수업을 듣다가 보내 주는 문제의 풀이 과정을 다시 보내는 것이었다”며 “피드백만 즉각적으로 해도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 팬데믹 2년 차, 더 중요해진 ‘정서 교류’


학생들이 학교에 자주 등교하지 못하며 느끼는 소외감과 우울함을 줄이는 것도 줌 세대를 위한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서울 강동구 한산초는 지난해 전교생(805명)의 15%(120명)가 긴급돌봄교실에 나왔다. 담임교사는 긴급돌봄에 참여하는 학생을 각자 교실로 불러 집에 있는 학생들과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했다. 심금순 한산초 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교실에 있으면 원격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교사들도 있었지만, 부모가 맞벌이라 돌봄교실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온라인에서 1, 2주 단위로 짝꿍이나 모둠을 지어주거나 종례 시간에 이번 주 생일인 친구를 축하해주는 식으로 학생들이 온라인으로나마 정서적 교감을 나눌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교육 신뢰 회복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

전문가들 ‘교육 패러다임 전환’제언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교육 현장의 혼란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2년차인 올해를 교육 대전환의 계기로 활용하되, 무엇보다 공교육 신뢰 회복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건은 학교 교육을 ‘주입식’에서 ‘자기 주도 학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원격수업으로 부모들이 너무 유튜브만 본다고 걱정했지만 유튜브에 지식이 많다는 것도 인지하게 됐다”며 “교사는 국영수 등 기본적인 학습은 디지털로 전환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관심사를 검색하고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다룬 책인 ‘코로나 사피엔스’의 공동 저자다. 학술적으로 일부 정확하지 않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갈 인류를 상징하기 위해 ‘코로나 사피엔스’라고 표현했다.

교육 전환을 위해선 교육부가 새로운 수업을 위해 교사들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육부는 와이파이 구축과 스마트기기 대여 같은 하드웨어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국가 차원의 원격수업 아카이브를 만들면 원격수업 격차도 줄고 수업도 변할 수 있는데, 지난해나 올해나 그런 정책은 하나도 없으면서 ‘미래 교육’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기존 학생 평가 방식의 전환도 이뤄야 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모두 똑같은 문제를 풀고 하나의 정답을 적어내는 평가 방식으로는 미래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각 학생이 가진 고유의 생각과 논리력을 들여다보는 평가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부터 단계별 로드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주신 분 (가나다순)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성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 교사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심금순 서울 한산초 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연진 부산 연산중 교사 △이현진 영남대 유아교육과 교수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 △최희정 대구 수성고 교사 △현보라 제주 중문초 교사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최예나 yena@donga.com·김수연·이소정 기자
#줌 세대#페이스메이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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