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활동이 사라진 ‘침묵의 봄’, 맑아진 공기의 역설[이원주의 날飛]

이원주 기자 입력 2020-04-09 15:48수정 2020-04-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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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마스크를 통해 들이마시는 숨은 ‘공기보다 깨끗한’ 들숨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를 울려대던 긴급재난문자는 대부분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였습니다.

2020년 봄, 마스크를 통해 들이마시는 숨은 ‘이보다 답답할 수 없는’ 들숨입니다. 더 깨끗할 수 없었던 새파란 하늘, 깨끗한 공기를 두고도 우리는 마스크를 벗지 못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2월 말~3월 초 정부와 지자체 등이 발송한 긴급재난문자. 미세먼지 내용이 대부분이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코로나19 정보를 알리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올해 봄 공기는 너무나 깨끗했습니다. 올해 3월 서울의 월 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6㎍/㎥를 기록했습니다. 초미세먼지 예보에서 15㎍/㎥ 이하면 ‘좋음’, 50㎍/㎥ 이하면 ‘보통’으로 분류됩니다.

올해 3월 초미세먼지 농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 기록이 시작된 2013년 10월 이후 3월 수치로는 가장 낮았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2월보다 3월의 초미세먼지가 더 낮았다는 점입니다. 초미세먼지 농도 측정이 시작된 이후 2월보다 3월 농도가 더 낮았던 적은 첫 해인 2014년 3월 한 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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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2월과 3월 초미세먼지(PM2.5) 농도 비교. 서울 전역에서 측정이 시작된 2014년 이후 올해는 두 번째로 3월 농도가 2월 농도보다 낮았습니다. 자료: 서울시

미세먼지(PM10)의 월 평균 농도 역시 낮았습니다. 2020년 3월 미세먼지 농도는 45㎍/㎥로 집계됐는데,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전역에서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2000년대 이후 수치를 모두 살펴봐도 3월 미세먼지 농도가 50 아래로 떨어진 해는 2012년 단 한 해(47㎍/㎥)뿐입니다. 미세먼지 농도는 2월에도 41㎍/㎥에 머물렀는데, 이렇게 되면 올해는 2000년 이후 2월과 3월의 미세먼지 농도가 모두 50 이하였던 유일한 해가 됩니다.

서울의 2월과 3월 미세먼지(PM10) 농도 추이. 올해는 2월과 3월 모두 미세먼지 농도가 50㎍/㎥ 이하인 해는 2000년대 들어 올해가 처음입니다. 자료: 서울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공기가 깨끗해졌다는 관측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던 중국 후베이성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대기질도 개선됐다는 미우주항공국, 유럽우주국 등의 분석 결과가 최근 일제히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주와 유럽대륙의 공기도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보도한 동아사이언스 기사

특히 우리나라는 올해 날씨의 영향과 코로나로 인해 중국 대륙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감소한 영향을 모두 받았습니다. 최소한 ‘깨끗한 공기’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최고의 혜택을 받은 셈입니다. 실제 사실상 국가 전체가 멈춰섰던 중국의 2020년 1~3월 미세먼지 농도는 1년 전 같은 때와 비교할 때 최대 60%나 감소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대기환경에 영향을 주는 중국 주요 도시와 서울의 지난해와 올해 초미세먼지 농도 비교. 서울의 감소세가 뚜렷합니다. 자료: 서울시, 베이징환경보호모니터링센터, 주베이징미국대사관대기환경모니터

날씨도 한몫 했습니다. 이번 겨울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북풍과 북동풍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좀처럼 겪기 힘든 날씨입니다. 원인에 대해 김해동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올해 겨울에는 추위를 만드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은 약한데 넓이는 매우 넓게 퍼져 한반도 전역을 모두 뒤덮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쪽 티베트 고원 쪽에서 만들어진 저기압이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상황이 매우 자주 만들어졌습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했기 때문에 이 저기압은 고기압을 가위로 자르듯 잘라내면서 한반도 상공을 통과했습니다. 저기압이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에 겨울철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미세먼지를 씻어줬고, 비가 그치고 나면 북동풍이 불어들면서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상당히 막아줬습니다.”

2020년 4월 9일 오전 9시 우리나라 주변 1.5km 상공 일기도. 강한 북풍이 불어서 중국 쪽에서 오는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자료: 기상청

3월 이후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미세먼지 감소에 힘을 보탰습니다. 한국도로공사에 요청해 받은 통계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2월 셋째 주 이후부터 3월 마지막 주까지 고속도로 통행량은 405만4000여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453만5000대)보다 10.6%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2월 말 이후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면서 고속도로 통행량이 지난해 대비 10%가량 감소했고, 이로 인해 초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줄어들었습니다. 자료: 한국도로공사

이 같은 통행량 감소는 특히 초미세먼지(PM2.5)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24.4%·도로 비도로 이동 오염원)는 제조업 공장(39.0%·제조업체 발생)에 이어 초미세먼지를 두 번째로 많이 발생시키는 오염원으로 꼽힙니다. 실제 서울 기준으로 초미세먼지인 PM2.5의 농도는 2월보다 3월에 더 낮은 수치를 보인 반면 미세먼지인 PM10 농도는 2월 대비 3월에 더 높아졌습니다.

2월과 3월의 서울 미세먼지 농도 비교. 통상 3월이 2월보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모두 더 많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자동차 통행량이 줄어들면서 미세먼지는 늘어난 반면 초미세먼지는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자료: 서울시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고 지쳐있던 우리에게 깨끗한 공기는 위안이 됐지만 이런 상황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공기가 이만큼 깨끗해지려면, 적어도 이제는 인간의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이 팬데믹 수준으로 멈춰서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국의 미세먼지 배출량 추이를 살펴보면, 중국의 경제성장률 지표와 묘하게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 해 전 대비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꺾어지는 해에는 중국의 미세먼지 농도도 감소했고, 한 해 전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미세먼지 농도도 따라서 올라가는 그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2008~2017 경제성장률 변동치와 초미세먼지 농도의 상관관계 그래프. 2차 산업 비중이 높은 중국에서는 경제성장률 변동에 따라 미세먼지 배출량도 함께 오르내리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 statistica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미세먼지 역시 동풍이 막아줬다고는 하지만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번 겨울 유난했던 동풍은 다른 해 겨울보다 약하고 넓게 퍼졌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첫 번째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한 시베리아 고기압’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추정하는 학계 의견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많이 높아지면서 지면이 차갑게 냉각되어야 발달할 수 있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제대로 힘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입니다. 깨끗한 공기는 순간이지만 지구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는 주장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에 있는 빙하 ‘톈산(天山) 1호’의 면적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 자료: 홍콩 밍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이제 세상은 전 분야에 코로나 전(BC)과 코로나 후(AC)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깨끗해진 공기 외에도 전 세계에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자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번식에 나섰다는 소식도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은 자연에 해를 입히는 인간을 비판했지만, 2020년 ‘침묵의 봄’은 사람이 사라진 곳에서 기지개를 편 자연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DDT 살포로 인한 환경 파괴를 고발한 레이철 칼슨의 1962년작 ‘침묵의 봄’ 초판 표지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은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날飛’ 독자 여러분도, 온 세상 모든 사람들도, 그리고 지구도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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