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실직자 80만명… 상용직 실업 늘어 質도 나빠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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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감원 실직 상반기 80만명]
상반기 비자발적 실직 8년만에 최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 폭이 30만 명에 육박했지만 실업률이 1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는 등 수많은 실업자가 고용한파에 내몰려 있다. 특히 직장 폐업,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잘린 사람이 올 상반기(1∼6월)에만 8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실업의 고통을 취재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베트남음식점에서 매장관리를 하던 박모 씨(36)는 올 5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월 8000만 원에 이르던 가계 매출이 1년 만에 반 토막 나자 사장은 박 씨를 내보내고 직접 매장을 관리하기로 했다. 박 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는 “경기가 나쁘다 보니 다들 직원을 줄이려고만 하지 뽑질 않는다.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 시급제뿐”이라고 했다.

박 씨처럼 올 상반기(1∼6월) 회사가 문을 닫거나 정리해고로 직원을 감축하는 등의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8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올 상반기(1∼6월) 실직한 사람은 212만1398만 명이다. 이 가운데 직장 휴·폐업, 조기퇴직, 정리해고, 사업 부진 등의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은 비자발적 실직자는 79만5564명으로 지난해보다 14% 늘었다. 이 같은 상반기 기준 비자발적 실직자는 2011년 80만1106명 이후 8년 만에 가장 많았다. 전체 실업자 대비 비자발적 실직자 비중은 37.5%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비자발적 실직자는 경기 악화가 고용시장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건강, 육아, 나이, 처우 불만 등의 본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생계 위협을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상반기 상용직으로 일하다 원치 않게 그만둔 사람은 19만608명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31.9% 늘었다. 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에 속한다. 이런 상용직에서 밀린 근로자 수가 2017년만 해도 11만 명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2년 동안 ‘실업의 질’도 악화된 셈이다. 이는 경영사정이 나빠진 회사들이 대규모 감축에 나서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5년간 다닌 의류무역회사에서 이달 권고사직을 당한 이모 씨(32·여)는 “200명 규모 회사에서 한꺼번에 30여 명이 나왔다”며 “같은 업계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했다.

이처럼 생계 터전에서 밀려난 이들이 늘면서 고용시장이 회복되고 있다는 정부의 평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4일 ‘7월 고용동향’에 대한 참고자료를 통해 최근 고용률과 실업률이 동반 상승하는 건 경제활동참가자가 늘어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활력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지난달 경제활동참가율은 64%로 작년 같은 달보다 0.4%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 것을 반드시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지금처럼 경기가 나쁠 때는 가장의 소득이 줄어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구직에 나서는 ‘부가노동자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지금은 고용시장이 좋아져서라기보다 삶이 더 팍팍해진 결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노인과 청년 대상 공공일자리를 늘리면서 구직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덩달아 증가한 영향이 분명 있지만 대부분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추 의원은 “정부는 민간의 투자를 늘리고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상용직 실업#고용한파#비자발적 실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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