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무사고 운전 경력 기자가 ‘운전 중 딴 짓’ 실험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31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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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북 상주시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 시속 50km로 승용차를 몰던 기자의 운전석 차창 앞으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준년 공단 교수부장은 “이게 실제 사람과 부딪힌 것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기자가 운전한 135m의 실험구간은 도로 위에서 갑자기 발생한 위험 상황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설계됐다. 차량이 135m 지점에 이르면 전방 전광판에 ‘좌회전’ 또는 ‘우회전’이라는 신호가 뜨면서 동시에 물기둥이 솟는다. 신호대로 즉시 방향을 틀면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물기둥을 맞는다.

실험구간에서 기자는 운전대 옆에 설치한 스마트폰의 유튜브 동영상 흘깃거리면서 차를 몰았다. 10년 무사고 운전 경력이어서 시속 50km 정도에선 ‘별일 없겠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물기둥을 피하지 못했다.

운전 중 DMB 영상 잠금 해제 방법 인터넷에 나돌아

지난달 30일은 충남 아산시의 한 도로 갓길에서 여성 소방관 3명이 화물차에 치여 숨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사고를 낸 화물차는 소방차에서 막 내린 소방관 3명을 덮쳤다. 60대 화물차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를 낼 당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화물차 운전자는 시속 75km로 운전 중이었다고 했다. 주파수를 맞추느라 5초만 한눈을 팔았다고 해도 104m 정도를 눈감고 운전한 셈이다.

휴대전화 사용,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 등 ‘운전 중 딴 짓’으로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해 발생한 사고로 연간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1000명 넘는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운전 중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운전자가 낸 사고로 2017년 31명, 2018년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도 2017년 2029명, 2018년 1414명에 이른다.

2013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주행 중인 차량 내에서는 DMB 시청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국내 차량 제조사들과 국내에 차량을 판매하는 해외 제조사들은 주행 중엔 DMB 영상이 나오지 않게 해서 차를 판매한다. 주행 중 DMB 영상 잠금은 2012년 5월 경북 상주시에서 도로를 달리던 여성 사이클 선수 3명이 화물차에 치어 숨진 사고를 계기로 도입됐다. 당시 사고를 낸 60대 운전자가 DMB를 화물차를 몰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스마트폰 초기 화면과 DMB 애플리케이션(앱)에 운전 중 사용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넣은 것도 이 사고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차량 내 설정버튼을 몇 번만 누르면 DMB 영상을 볼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어로 ‘DMB락’이라고 입력하면 국산과 수입 차를 가릴 것 없이 차종별로 주행 중 DMB 영상 잠금을 해제하는 방법이 수십 개씩 뜬다. 휴대용저장장치(USB 메모리)를 이용한 동영상 시청, 스마트폰 화면을 차량 내 모니터에 띄우는 미러캐스트 등도 주행 중 영상 시청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들이다.

유튜브, 푹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엔 운전 중 사용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도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DMB뿐 아니라 유튜브 시청에 대한 단속도 강화할 방침이다. 주행 중 차량 영상잠금 해제는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해 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한 눈 팔지 않는 게 안전운전 기본

영상 시청뿐 아니라 전화 통화나 라디오 주파수 조작 등 운전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행동이 위험하다. 특히 카카오톡 등 문자메시지 확인이나 전송은 전방 주시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운전대를 잡아야 할 두 손 중 하나를 휴대전화를 쥐는데 써야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더 크다. 5일 실험에서 기자는 전화 발신, 문자 전송, 라디오 주파수 조작 등을 하는 상황에서 모두 물기둥을 피하지 못했다.

운전 중 긴급 업무를 비롯한 중요한 일로 전화를 꼭 주고 받아야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엔 인공지능(AI) 기능을 이용하면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지 않고도 통화를 할 수 있다. 삼성전자 ‘빅스비’, 구글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등은 최근 향상된 음성인식으로 사용자가 말하는 “○○에게 전화 걸어줘”라는 음성명령에 따라 전화를 건다. 2015년 이후 출시된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추가 비용 없이 쓸 수 있다. 내비게이션 중 SK텔레콤의 ‘T맵’은 AI 음성인식만으로 목적지 입력이 가능하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는 것 대신 블루투스 기능으로 ‘핸즈프리’ 통화를 하고 두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AI 기능과 핸즈프리도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김 교수부장은 “운전은 인지, 판단, 조작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다. 운전할 때 한 눈을 판다면 위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철저한 전방주시만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는 지금 ‘운전 중 딴 짓’과 전쟁 중

삼성전자는 2017년 네덜란드에서 ‘인 트래픽 리플라이(In Traffic Reply)’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출시했다. 이 앱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여러 센서와 연동해 사용자가 차량 운전 중이거나 자전거로 이동 중일 때 전화, 문자메시지(SMS) 등의 연락이 올 경우 ‘지금 운전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발신되도록 하는 기능을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운전자의 3분의 1 가량이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교통안전에 큰 위협으로 떠오른 게 개발 배경이었다. 인 트래픽 리플라이는 무료로 공개돼 북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유사한 형태의 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교통안전 문화를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스마트폰 사용, 동영상 시청 등 ‘운전 중 딴 짓’이 불러오는 위험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현대인의 특성상 운전 중 수신되는 전화, SMS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등을 확인하려는 욕구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미국 코네티컷대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그린필드 교수는 스마트폰의 콘텐츠를 확인하는 사람의 뇌에서 행복감을 주는 화학물질 ‘도파민’이 나오는 것을 밝혀내면서 운전 중 스마트폰 금단현상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운전 중 딴 짓을 막기 위한 각 국 경찰의 단속과 처벌 강화는 물론 민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업종 특성상 운전을 하는 일이 많은 물류회사 UPS, 석유회사 쉘 등은 전 직원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점을 감안해 핸즈프리로도 전화를 하지 못하게 해 운전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의 영국법인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팔걸이 역할을 하는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놓으면 휴대전화는 물론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모든 무선통신 신호가 차단되는 ‘시그널 쉴드(신호 차단)’ 기술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상주=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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