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 ‘官로비 담당자’와 직거래하는 경찰… 후임에 뒷돈 대물림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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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경찰-유흥업소 유착비리, 2011년 ‘이경백 사건’ 이후 변화


2011년 7월 서울 강남경찰서에서는 과장급 이상 간부 14명 중 10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형사과 직원도 전체의 3분의 1이 물갈이됐다. 강남서 소속 직원을 포함해 수십 명의 경찰관이 일명 ‘룸살롱 황제’로 불린 유흥업소 운영자 이경백 씨(47)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유착 비리’가 불거지자 경찰이 내놓은 특단의 조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 이후로도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유착 비리는 근절되지 않았다. 본보가 2011년 7월 ‘강남서 물갈이 인사’ 이후 발생한 강남지역 4개 경찰서(강남·서초·수서·송파서) 직원과 업소 측 간의 유착비리 관련 판결문 15건과 징계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사건에 연루된 경찰 15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중 8명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서초경찰서에서 1년 6개월 동안 유흥업소 단속 업무를 맡았던 경찰관 A 씨(46)는 2010년 11월 잠원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영업사장 B 씨(65)를 만났다. 이 업소의 ‘관(官)로비 담당자’였던 B 씨는 성매매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 달라면서 3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런 거래는 4년간 계속됐다. A 씨는 매달 30만∼100만 원을 받았다. 그 대가로 경찰의 성매매 단속 정보를 넘겼다.

은밀한 거래는 후임 경찰에게도 대물림됐다. A 씨는 유흥업소 단속 업무를 맡게 된 같은 경찰서 직원 C 씨(57)를 2014년 B 씨에게 소개했다. C 씨도 1년간 B 씨에게서 ‘검은돈’을 받았다.

B 씨의 관로비는 이 업소가 2016년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발각됐다. 검찰이 압수한 업소 컴퓨터 안에서 발견된 자료에 매달 일정 금액 옆에 ‘협조비(B)’ ‘○사장 관’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경찰에 매달 돈을 상납했다고 자백했다. A 씨와 C 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각각 징역 4년과 2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강남 일대 경찰관 11명이 이경백 씨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겼다. 지구대 순찰팀에서 ‘수금책’을 정해 매달 일정 금액을 받은 뒤 나눠 갖는 식이었다. 하지만 2011년 7월 이후 발생한 유착 비리 사건에서는 이런 ‘조직적’ 비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흥업소 직원이 성매매 등의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에게 은밀하게 접근하고 경찰이 단속 정보를 흘려주는 ‘직거래’형이 대부분이었다.

강남서 112종합상황실에서 접수 신고 기록을 관리하던 경찰 D 씨(50)는 2013년 1월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던 E 씨를 ‘스폰서’로 삼았다. D 씨는 E 씨로부터 1년 3개월 동안 매달 50만∼70만 원을 받았다. E 씨 이름으로 빌린 아파트에서 3개월간 돈 한 푼 내지 않고 살기도 했다. 대신 D 씨는 E 씨 업소의 불법행위를 알린 신고자의 전화번호와 인적사항을 넘겼다.

경찰관이 유흥업소에 직접 투자하고 수익을 챙기는 ‘동업형’ 비리도 있다. 송파서 관할의 한 파출소에 근무했던 F 씨는 2016년 2월 여성 접대부를 고용한 유흥업소에 1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뒤 영업 일지와 매출실적을 보고받았다. 수서서 소속이었던 G 씨(47)는 2011년 12월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단란주점 관계자를 만나 단속을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400만 원을 받았다가 해임됐다. ‘강남서 물갈이 인사’가 있은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 벌어진 일이다.

고도예 yea@donga.com·송혜미 기자
#강남#경찰#유흥업소#유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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