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 쓴 인부 찾기 힘들고, 공사현장 소장에겐 술 냄새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4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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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안전어사대’ 동행해 보니

서울시 안전어사대 불시 점검 현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시 안전어사대 불시 점검 현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달 초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리모델링 공사 현장. 흰색 안전모를 쓴 서울시 시설안전과 소속 ‘안전어사대’ 3명이 불시에 방문해 현장 점검을 시작했다. 점검은 30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지적사항은 쏟아졌다.

1층 입구에는 액화석유가스(LPG)통이 결박장치 없이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다. 규정 위반이었다. 2층 벽에는 가로 세로 각각 2m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추락을 방지하는 난간이 없었다. 현장을 살피던 안전어사대 조성주 주임이 벽에 설치된 비계(飛階·건설현장에서 작업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가시설물)를 쥐고 흔들었다. 단단히 고정돼 있어야 할 쇠파이프가 힘없이 휘청댔다. 바닥에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고 붕 떠 있었기 때문이다. 조 주임은 “작업자들이 지나다녀야 하는 곳인데 너무 허술하다. 작업발판이 끝나는 지점에 추락 예방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전모를 쓴 인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사 현장을 관리 감독해야 할 현장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5분 뒤 모습을 드러낸 소장에게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겼다.

서울시가 7월 초 출범시킨 안전어사대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났다. 안전어사대는 건설 현장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집중 단속반이다. 지난해 하절기 기준 서울에서 일어난 건설현장 사고 사망자 45명 중 71.1%인 32명이 추락사고로 숨졌다. 안전어사대는 토목과 건축, 방재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20여 명으로 구성됐고, 1조에 2,3명씩 조를 이뤄 현장 점검을 한다. 이들은 사전 통보 방식 대신 예고 없이 공사장을 찾아 점검을 벌인다. 그래서 이름에도 ‘어사(御史)’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들이 최근 점검에 나선 마포구 동교동과 연남동 일대는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명소들이다. 유명세를 얻자 오래된 건물을 4, 5층 높이로 리모델링해 상가 등으로 바꾸기 위한 공사장이 늘고 있다. 이런 중소규모 민간 공사장이 안전어사대의 집중 점검 대상이다.

안전어사대가 찾은 공사장 세 곳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서너 가지 이상의 지적 사항이 나왔다. 8월 한 달간 서울 공사장 약 3200곳 중 206곳에서 총 683건의 지적이 나왔다. 한 곳당 평균 3건 이상이다. 유형별로 봤을 때 가장 많았던 것은 안전난간 미설치(166건)와 안전모 미착용(96건)이었다. 작업 통로 관리가 불량한 경우는 75건이었다.

건설 현장에 잔뼈가 굵은 안전어사대원들은 추락뿐만 아니라 여러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현장의 모습을 포착해 감리자 등에게 알려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공사 등에 ‘한 번 더 잘 살펴보라’고 제안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앞으로 과태료 부과 등 일부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과태료 부과 권한은 고용노동부에 있고, 지도 감독 등은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의 근로감독관이 할 수 있다. 지금은 안전어사대가 점검 결과를 고용노동부와 자치구 등으로 보내 처분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의 통보를 ‘위험 신고’로 접수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전어사대는 올해 공사장 위주의 단속에 이어 내년부터는 민간 다중이용시설의 비상구, 소방시설 등으로 범위를 확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안전어사대 강대식 주무관은 “땀 냄새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지적만 하고 다니는 게 멋쩍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활동이 이들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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