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사기’ 먹잇감 된 외국인 유학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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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부동산 계약’ 피해 속출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몽골인 유학생 K 씨(24·여)는 지난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학생비자 발급을 위해 대학에 제출한 부동산 계약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K 씨가 학교에 낸 계약서는 집주소와 K 씨의 인적사항을 연필로 적은 세 줄이 전부였다. 그는 “한국에선 원래 부동산 계약을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대학 관계자는 “집주인이 부실 계약서를 작성한 뒤 월세를 부당하게 올리거나 이중 계약을 맺는 바람에 피해를 보는 유학생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유학생이 12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의 부동산 계약 피해도 늘고 있다. 피해를 보더라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당하는 부동산 계약 피해 유형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월세나 보증금을 떼이는 경우다. 베트남인 유학생 B 씨(28)는 7월 이사 과정에서 이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5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올해 초 방을 계약하며 6개월 치 월세를 현금으로 한 번에 지불한 게 화근이었다. 방을 뺄 때가 되자 돌연 집주인은 방값을 받은 적이 없다며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래 기록이 없어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 밖에도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는 수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끼리 한국인 집주인에게서 빌린 집을 다시 세놓는 과정에서 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이를 눈치 챈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쫓아내거나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피해를 본 외국인 유학생이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이기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임교수는 “외국인 유학생도 외국인등록과 체류지 변경 신고를 마쳤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인 유학생 징모 씨(26)는 “절차가 복잡한 데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입장에서는 관련 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워 피해 신고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대학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부동산 사기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숙사에 배정을 하려고 하지만 최근 들어 유학생이 급격히 늘면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부산의 한 대학 관계자는 “신고 접수 및 피해 상담 시스템이 없어 피해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이 인기다. 2014년 설립된 ‘스테이즈’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부동산 매물을 추천해주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계약서상 조건을 번역해 계약을 돕는 스타트업이다. 스테이즈가 올해 성사한 계약 건수는 4000여 건으로 2014년 대비 30배 이상 늘었다. 이병현 스테이즈 대표는 “그만큼 한국에서 부동산 거래에 애를 먹는 외국인 유학생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피해 예방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에게 관련 정보를 사전에 더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부동산 계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가 등을 대상으로 영문 부동산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사기#유학생#부동산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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