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매트리스’ 밖에 내놓자 이웃들 항의…분류-처리도 첩첩산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7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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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직원들이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대진침대 매트리스를 우체국 택배 차량에 수거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우체국 직원들이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대진침대 매트리스를 우체국 택배 차량에 수거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6일 오전 7시 반 경기 광명시 하안동 A아파트 8층. 신모 씨(30·여)와 박모 씨(30) 부부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주일 동안 닫아놓고 쓰지 않던 방이다. 그리고 침대 매트리스를 대형 비닐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신 씨가 혼수로 마련했던 대진침대의 퀸사이즈 매트리스다. 마스크를 쓴 두 사람은 비닐로 싼 매트리스를 현관 밖으로 옮겼다. 무겁고 크기도 커서 두 사람만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어렵게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1층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앗다. 이어 나무 프레임과 이불까지 차례로 비닐에 싸서 내려놓기까지 1시간 반가량 걸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박 씨는 “음이온 침대라서 믿었는데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며 허탈해 했다.

소비자·집배원 “우리가 왜 이런 고생 하나”

주말동안 우체국을 통해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 매트리스 수거가 진행됐다. 전국적으로 집배원 등 우정사업본부(우본) 직원 3만 명과 차량 3200여 대가 동원됐다. 우본은 대진침대가 보내온 소비자 현황을 바탕으로 미리 밀봉용 비닐을 보내고 집 앞에 매트리스를 내놓으라고 요청했다.

작업절차는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해당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과 혼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 씨(35·여)는 혼자 매트리스를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 부모님에게 ‘SOS’를 보냈다. 결국 전북 전주시에 사는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왔다. 이 씨는 “아버지가 ‘잠자리가 중요하다’며 사준 침대”라며 “여전히 불안한 것도 문제이지만 나중에 매트리스를 교환해줘도 어떻게 옮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박모 씨(42·경기 수원시)는 하루 전인 15일 매트리스를 아파트 1층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사람이 지나는 곳에 발암물질을 내놓으면 어떡하냐”는 민원이 제기돼 다시 집으로 옮겨야 했다. “비닐로 밀봉해 안전하다”고 설명했지만 이웃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수거 당일인 16일 다시 매트리TM를 1층에 내려놓았다.

매트리스 규격 탓에 수거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정모 씨(48)는 이날 퀸사이즈와 킹사이즈 매트리스 두 개를 내놓았다. 하지만 우체국 직원들은 퀸사이즈만 수거했다. 나머지 매트리스는 미리 신고된 것이 아니었다. 정 씨의 사정으로 직원들이 수거하려 했지만 트럭에 실리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결국 정 씨는 매트리스 한 개를 다시 방 안에 넣었다. 빈 방 청소를 위해 예약한 청소전문서비스도 연기했다.

분류·처리 문제도 ‘첩첩산중’

우체국을 통해 수거된 침대는 전국 32개 물류거점을 거쳐 경기 평택시와 충남 당진군에 마련된 임시 야적장으로 옮겨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기존 수거 분량을 포함해 매트리스 4만여 개의 처리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모나자이트가 들어간 부품(속커버, 에코폼 등)과 금속스프링, 나머지 소재를 분리해 모나자이트 부품은 밀봉해 보관하고, 금속스프링과 나머지 소재는 환경부와 협의해 일반폐기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침대 분리 도중 다량의 모나자이트 가루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분리 이후 처리는 더 큰 문제다. 폐기물 처리를 맡은 환경부는 조만간 소각업체들을 섭외해 매트리스의 가연성 소재를 순차적으로 소각하고 스프링은 재활용업체로 보낼 계획이다. 하지만 그 양이 상당한 데다 모나자이트를 완벽히 분리할 수 있을지, 방사능에 노출된 폐기물을 일반폐기물과 같이 태워도 괜찮은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모나자이트가 들어간 부품은 아예 처리방안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이렇게 대량으로 발생한 건 처음”이라며 “밀봉한 뒤 매립·소각할지, 격리시설을 만들어 보관해야 할지 논의를 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장 임시 야적장 근처 주민은 반발하고 있다. 17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주민 10여 명은 동부항만 고철 야적장 입구 앞에 천막 2개를 설치하고 매트리스 반입을 막아섰다. 이들은 “매트리스를 다른 장소로 반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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