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회]시어머니가 내 SNS 팔로우를? 부랴부랴 사진 지웠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17시 20분


코멘트


‘kim****님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보는데 모르는 아이디가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는 알람이 떴어요. 아이디를 눌러보니 프로필 사진에 유채꽃밭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시어머니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시어머니가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내신 것이었죠. 깜짝 놀라 꼬투리 잡힐 만한 사진은 부랴부랴 다 지워버렸어요.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어요. 얼마 뒤 시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제 인스타그램을 다 둘러보셨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얘, 우리한테는 말도 없이 너희들끼리 언제 여행을 갔었니?”, “맨날 외식하면 돈은 언제 모아? 집에서 밥은 안해 먹니?” 등 질문을 쏟아내셨거든요. 어찌나 당황했던지. 어떻게 둘러댔는지 기억도 안나요. 통화 말미엔 “왜 그동안 인스타그램 한다고 말 안했어? 나도 페이스북도 하고 다 하는데….”라고 섭섭한 듯 말씀하시더라고요. 참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가족 눈치 보면서 해야 하나요?

한 때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SNS는 이제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SNS 이용률 조사에 따르면 50대 10명 중 6명이 SNS를 사용하고 있다. SNS가 일상화되다보니 친구나 동료는 물론 가족, 친척들과도 SNS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SNS를 통한 가족 교류 중 뜻하지 않는 사생활 침해로 갈등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필라테스 강사인 김미연 씨(가명·40·여)는 최근 카카오톡(카톡) 프로필 사진을 본인의 비키니 사진에서 꽃 사진으로 바꿨다. 얼마 전 만난 시댁 식구들이 “나이가 들어도 몸매가 확실히 좋네”라며 지나가듯 말한 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직업상 찍은 사진인데 시댁 식구들에겐 안 좋게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사진을 바꿨다”며 “집안 어른들이 내 SNS를 본다고 생각하니 프로필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양모 씨(29)도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최근 SNS에 올린 사진을 모두 지웠다. 양 씨는 “여자친구와의 일상을 SNS에 올렸는데 그걸 부모님이 발견하셨다”며 “‘결혼할만한 애는 아닌 거 같다’, ‘빨리 선을 봐라’며 간섭하시는데 화가 나서 사진을 다 지워버렸다”고 말했다.

정치 이슈가 가족 간 SNS에 끼어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친척들과 제례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단체 카톡방을 만든 이준희 씨(45)는 “선거철이 되자 단체 카톡방이 ‘선거 운동방’으로 변질됐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큰아버지가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동영상 등을 공유하면, 작은 아버지가 이를 반박하는 글을 올려 싸움이 붙는다는 것. 이 씨는 “정치는 친한 친구는 물론 부모 자식간에도 이야기하기 민감한 주제”라며 “아버지가 ‘누구 찍을거냐’고 SNS로 물을 때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선한 의도로 공유한 좋은 콘텐츠가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시점과 빈도가 문제다. 지방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양모 씨(26·여)는 “새벽잠이 없는 아버지가 매일 아침 6시면 가족 카톡방에 ‘오늘의 좋은 글귀’를 올려 아침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 씨(25)는 “한번은 아버지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효란 무엇인가’란 글을 올리신 적이 있다”며 “아버지는 감동해서 보내신 것 같은데 읽고나니 괜히 ‘내가 부족하다는 뜻인가’란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SNS를 통해서라도 가족과 가까워지고픈 기성세대의 순수한 마음을 젊은 세대가 몰라준다는 항변이 나오기도 한다. 고등학생 딸을 둔 이모 씨(46·여)는 “얼마 전 사춘기 딸이 SNS 프로필에 남자와 찍은 사진을 올려놨길래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신경쓰지 말라’며 화를 냈다”며 “딸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궁금해 물어본 것뿐인데 섭섭하다”고 말했다.

SNS로 가족 간 얼굴이 붉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남옥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은 “부모는 부모끼리, 자녀들은 자녀들끼리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법”이라며 “자녀가 먼저 SNS를 알려주기 전까지 찾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메시지는 보내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받는 쪽이 불편해하면 그건 불편한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가족으로부터 원치 않는 SNS 팔로우 요청을 받았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상담전문가인 김유정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는 “모르는 척 둘러대면 서로 더 불편하다. ‘어머님 거긴 친구들이랑 찍은 장난친 사진이 너무 많아요’ 같은 말로 완곡하고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하는 게 낫다”며 “‘카톡으로 저희 부부 사진 자주 보내드릴게요’처럼 대안을 제시하면서 부드럽게 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