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재개발… 고쳐 뭐하나” 철근 드러난 건물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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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붕괴건물 주변지역 살펴보니

4일 잔해 더미만 쌓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4층 건물이 무너진 자리 바로 옆 2층 컨테이너 건물은 외벽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전날 사고 직후 발생한 화재로 외벽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벌어진 벽 사이로 내부 마감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재건축 조합 사무실로 쓰여 온 이 컨테이너 건물은 붕괴 위험이 높아 사고 직후 폐쇄됐다.

본보 취재팀이 4층 건물 붕괴 사고가 난 용산 재개발 5구역의 10개 건물을 확인한 결과 대부분 낡고 부식된 곳이 많아 상당히 위태로워보였다.


○ “우리 건물도 무너질까 두려워”

무너진 건물 뒤편 5층짜리 건물에는 이날 방문객이 많았다. 치과, 웅변학원, 노래방, 호프집 등이 영업 중이었다. 용산구는 사고 건물 양 옆 2개 동은 폐쇄했지만 지은 지 46년 된 이 5층 건물을 포함해 나머지 8개 동은 붕괴 위험이 낮다고 보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건물 계단으로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벽면에는 길이 10cm 안팎의 금 20여 개 가 보였다. 검은 곰팡이도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해 벽으로 물이 스며든 흔적이었다. 취재진과 함께 건물을 점검한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물이 노후돼 물이 새고 콘크리트, 철근이 부식되고 있다.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폐쇄되지 않은 건물 8곳 중 7곳은 음식점 부동산 PC방 등 상업시설이 정상 운영 중이었다. 건물 일부 층에 세입자가 거주하기도 했다. 대부분 지은 지 40∼50년 된 건물들로 일부 벽면에 시멘트가 벗겨져 부식된 콘크리트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특히 벽과 벽이 만나는 건물 구석에 금이 많이 가 있었다. 최 교수는 “노후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 균열이다. 건물이 하중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계단은 대부분 의자, 책상 등으로 막혀 있어 사고 시 대피도 어려워보였다. 3일 건물 붕괴 후 용산구 측 현장점검 위원으로 참여한 한 건축회사 대표는 “주변 건물들이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정밀점검이 시급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폐쇄되지 않은 한 건물의 식당 종업원 이모 씨(60·여)는 “혹시나 우리 건물도 무너질까 두려워 더워도 무조건 야외 의자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 “어차피 철거할 건물 뭐 하러 고치나”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용산 재개발 5구역은 2006년 재개발이 확정됐지만 12년간 사업 진척이 없어 사실상 방치돼 왔다. 언제 건물을 허물지 몰라 구청과 건물주들이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곳이 많다. 이 5구역을 포함해 용산 재개발 지역 전체적으로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용산 재개발 지역 중 한 곳인 한남뉴타운 3구역 일대에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노후 주택이 즐비했다. 3가구가 사는 3층 벽돌 주택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천장에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일부 주택의 경우 삭아서 앙상해진 목재 구조물이 대형 슬레이트 지붕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주민 이모 씨(82·여)는 “빈집 주인 대부분이 재개발을 노리는 외부인들이다. 구청은 어차피 재개발될 곳인데 뭐 하러 고치느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연면적 1000m² 이상 건물은 지방자치단체 점검 대상이다. 문제는 재개발 지역 건물 대다수가 이 기준에 못 미쳐 점검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3일 붕괴된 4층 건물의 연면적은 301m²였다.

용산구 관계자는 “점검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소유주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며 “사고 건물의 경우도 지난달 10일 건물주에게 ‘조치해 주셔야 한다’고 얘기했을 뿐 강제적인 수단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사고 건물을 합동감식한 뒤 “화재나 폭발로 인한 붕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규진 newjin@donga.com·김은지·이지훈 기자
#재개발#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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