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제주도는 식물자원의 보고… 장미처럼 로열티 받고 수출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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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김봉찬 더가든 대표

국내 생태정원 선구자인 김봉찬 더가든 대표가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에서 생태주의, 자연주의 정원을 보여주는 미니 정원을 조성해 다음 달 초 일반에 공개한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국내 생태정원 선구자인 김봉찬 더가든 대표가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에서 생태주의, 자연주의 정원을 보여주는 미니 정원을 조성해 다음 달 초 일반에 공개한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 ㈜더가든. 김봉찬 더가든 대표(53)는 회사 용지 8000m² 가운데 일부를 정원으로 꾸미느라 분주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의뢰를 받아 정원을 조성하다가 문득 ‘내 정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생태주의, 자연주의 정원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정원의 정석을 담은 ‘본보기집’이나 다름없다. 척박한 밭을 일구면서 생긴 돌을 모아둔 ‘베케’(제주 방언)에 이끼가 낀 정원,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을 이용한 습지정원, 고사리 등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이 자연스레 보금자리를 튼 그늘정원, 철거한 감귤과수원 창고의 콘크리트 벽을 이용해 해안 식물인 암대극으로 멋을 낸 폐허정원…. 산수국 꽃 모습이지만 종이 전혀 다른 백당나무 꽃이 활짝 핀 야생화정원, 억새와 초지도 훌륭한 정원의 자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입구정원 등 이른바 ‘정원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정원에 신축한 카페 건물도 정원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숲 깊숙이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목련 품종만 30종에 이르고 백두산 지리산 히말라야 등지에서 자라는 만병초 품종은 70종이나 된다. 야생화까지 포함하면 무려 300종 넘게 심어져 마치 식물원에 온 것 같다. 무엇보다 넓지 않은 공간에 이처럼 다양한 종이 들어섰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식물들은 파종과 삽목 등으로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0여 년 동안 길러진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정원을 다음 달 초 무료 개방한다.

“정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서 관상하는 초기 단계에서 세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중세를 지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인공구조물로 가득한 도심에 자연의 생명을 담아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활력을 찾도록 하는 일로 진화했습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는 정원이 생활의 일부이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걸음마 단계입니다.”

○ 생태정원의 최고 전문가

김 대표는 한국에 자연주의, 생태주의 정원(또는 조경)을 도입한 최고 전문가다.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비오토피아 조경과 여미지식물원 습지원을 비롯해 경기 포천 평강식물원과 곤지암 화담숲 암석원,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어린이정원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암석원, 습지원, 그늘정원 분야는 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 이사와 제주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이란 책을 펴냈다.

미지의 길을 개척하는 게 그렇듯 처음은 가시밭길이었다. 제주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었던 여미지식물원에서 잡일을 했다. 온실 연못 청소를 하는 게 싫어 꾀를 낸 것이 수생식물을 이용한 수질 정화였다.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식물원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였던 외국 정원 관련 책과 자료를 꺼내 읽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성공적으로 연못정원을 조성한 후 관심은 더욱 커졌다. 10년 동안 여미지식물원 근무를 마치고 1999년 평강식물원 소장으로 일을 하면서부터 머릿속으로 그렸던 고산식물 조성 기술을 식물원에 적용했다. 땅속 1m 깊이에 자갈을 깔아 뿌리를 시원하게 해주니 한라산 고산식물인 시로미, 털진달래, 섬바위장대, 한라장구채 등이 잘 자랐다.

“암석원은 미학이나 예술적 영감만으로 완결할 수 없습니다. 전혀 다른 기후와 토양에서 고산식물을 키워 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습지원을 만들 때는 중장비를 들여놓지 않습니다. 혹여 땅이 다져지면 물 흐름이 바뀌어 습지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죠. 뜨거운 햇볕을 순하게 만들고 바람을 부드럽게 하는 숲 그늘은 아늑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주도록 만듭니다.”

○소득 작목으로 유망한 정원 식물

만병초는 토양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꽃 색깔이 다양한 데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푸르름을 유지하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정원에 단골처럼 심어진다. 국내에서는 재배법을 몰라 화분용으로만 키웠다. 김 대표는 보습이 되면서 물 빠짐도 잘되는 흙이라야 머리카락처럼 가는 뿌리가 정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양에서는 ‘1달러는 토양에, 1센트는 나무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토양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에서는 소나무에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투자하는데 정작 토양에 대한 관심은 적다.

“요즘 만병초가 고액에 팔려나가는 효자 수입원입니다. 정원 조성에 들어가는 꽃과 나무가 소득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주도는 식물자원의 보고(寶庫)입니다. 특히 한라산 고산식물이나 자생식물은 왜소하기 때문에 작은 나무나 식물을 선호하는 정원에 최적입니다. 품종을 선발해 해외에 수출하거나 장미처럼 특허 등록을 하면 로열티를 받는 수입원이 됩니다.”

그는 “정원식물 재배는 감귤 대체산업이나 미래 1차산업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책을 뒤져가며 지식을 얻고 현장을 다니면서 땀으로 체득한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2015년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을 만들었다. 1년에 4차례 모임을 갖는데 국내 정원전문가와 전공자 등 60명이 제주에 모여 산과 계곡, 오름을 다니며 답사를 한 뒤 밤샘 토론을 한다. 활동이 알려지자 서울정원박람회에서 2016년과 2017년 모임을 초청해 공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제주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자 ‘제주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을 따로 만들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전문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제주도는 온대, 난대식물은 물론이고 아열대 식물까지 자생하고 있어 생태주의 정원에 최적입니다. 도시에 곶자왈(용암암괴에 형성된 자연숲)과 오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새들이 찾아와 생태계가 형성되고 도시민들은 숲속에서 사는 듯합니다. 원도심 재생사업을 하는 데 바로 이런 정원이 들어서야 합니다.”

그는 제주에 자연이 숨쉬는 정원을 조성하는 게 꿈이다. “‘평원의 정원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처럼 그런 정원을 꾸미고 싶어요. 그 자체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어요. 정원은 도시에 쫓겨난 자연을 복원하거나 새롭게 자연을 창출하는 ‘마법’을 부릴 수 있거든요.”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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