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이슈]“집어치워라”…6개월 만에 열린 특수학교 설명회 또 난장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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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에서 열린 서울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 주민 
설명회장에서 일부 반대 주민들과 장애 학부모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공진초 자리에는 내년 9월 서진학교가 개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반대 주민을 달래기 위해 주민 편의시설 확충 방안을 제안했다. 뉴스1
26일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에서 열린 서울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 주민 설명회장에서 일부 반대 주민들과 장애 학부모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공진초 자리에는 내년 9월 서진학교가 개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반대 주민을 달래기 위해 주민 편의시설 확충 방안을 제안했다.
뉴스1
“장애 학생에게도 수영시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민이 원하신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함께…”.

갑자기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26일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에서 열린 서울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 주민 설명회장은 또 난장판이 됐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은 조 교육감을 향해 확성기까지 꺼내며 “집어치워라”, “거짓말하지 마라”며 고함을 쳤다. 장애 학부모들이 이들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반대 주민들과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강서구 주민이 아니면 빠지라”는 반대 주민의 호통에 서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주소지를 인증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특수학교 설립을 간청하는 장애 학부모의 ‘무릎 호소’ 이후 반 년이 지났지만 반대 주민과 학부모 간 감정의 골은 여전했다.

이날 설명회는 내년 9월 개교하는 특수학교 2곳의 설립 추진 현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미 시교육청은 강서구 옛 공진초 자리의 ‘서진학교’와 서초구 옛 언남초 자리의 ‘나래학교’ 등 특수학교 2곳의 설계를 확정했다. 서울에서 2002년 이후 17년 만에 생기는 특수학교다.

시교육청은 이날 반대 주민을 달래기 위한 주민 편의시설 확충 방안을 제안했다. 조 교육감은 경기 파주 출판도시 ‘지혜의 숲’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을 예로 들며 “복합문화공간을 만들면 주민들에게 조금 위로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실제 서진학교에는 주민이 이용 가능한 북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조 교육감은 반대 주민들로 구성된 ‘강서 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원했던 수영장 건립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 20여 명 중 누구도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들은 “설명회 자체가 일방적”이라고 반발했다. 손동호 비대위원장은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미 특수학교가 있는 강서구에만 왜 또 짓느냐. 없는 곳부터 먼저 지으라”고 항의했다.

강서구에는 사립 특수학교인 ‘교남학교’가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라 학생을 더 받을 수 없다. 그렇다보니 강서구에 살면서도 다른 구에 있는 특수학교로 왕복 2, 3시간 통학을 하는 장애 학생이 적지 않다. 시교육청은 특수학교가 없는 양천 금천 영등포 용산 성동 동대문 중랑 중구 8개 구에도 부지가 확보되는대로 특수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장애 학부모들은 반대 주민들의 달라지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부용 강서장애인부모회장은 “오늘은 특수학교 내 주민 편의시설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일부 주민은 여전히 지난해랑 전혀 달라진 것 없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도 특수학교 개교가 내년으로 확정된 만큼 대다수 장애 학부모는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설명회장에서는 반대 주민과 장애 학부모·시교육청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설명회가 끝나고 동네에서 만난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공진초에 인접한 한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 관계자는 “대다수 주민은 특수학교를 반대하지 않는데 일부 강성 주민만 반대하고 있다. 집값에도 전혀 영향이 없다”고 귀띔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비대위 규모도 지난해보다 축소됐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던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반대를 접는 대신 편의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현재 비대위에서 활동하는 주민 상당수는 옛 공진초 교문과 정면으로 마주한 신축 아파트 단지 주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명회가 끝나자 학교는 평소처럼 한산해졌다. 이미 폐교해 학생들은 없지만 일부 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산책을 했다. 매일 이곳에서 운동을 한다는 김모 씨(65)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파트에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우리 동네에도 장애인도 살고, 다 같은 사람인데 같이 잘 살아야죠.”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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