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 찍은 차기 주자… 30년 정치인생 끝날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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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행 파문]‘정치인 안희정’의 몰락

“30년 정당 정치인입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평소 입버릇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24세 때 정계에 발을 디딘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다양한 선택지 앞에 섰지만 진보진영 정당을 30년 가까이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5일 자신의 정무비서 성폭행 폭로 이후 1시간 만에 해명도 못 하고 당으로부터 출당 및 제명 조치를 통보받았다. 30년 정당 정치인의 꿈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말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안 전 지사의 정치 여정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9년 김덕룡 의원(당시 통일민주당)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3당 합당 뒤 ‘꼬마민주당’에 잔류해 소수 야당의 설움을 겪었다. 1992년 여의도를 떠난 안 전 지사를 다시 부른 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 낙선 뒤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고 살림살이를 안 전 지사에게 맡겼다.


안 전 지사는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선거 등 지역주의에 도전한 노 전 대통령의 숱한 좌절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이 1998년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는 국회에 입성하는 대신에 ‘장수천’이라는 생수 사업을 이끌며 측면 지원했다.

안 전 지사는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금강캠프’를 이끌며 개국 공신이 됐다. 그러나 환희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 전 지사는 당선 1주년 즈음인 2003년 12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수감됐다. 그는 법정에서 “저를 무겁게 처벌해 주셔서 승리자도 법과 정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이고 증명해 달라”고 최후 진술을 하기도 했다.

1년간의 수감 생활 뒤 출소한 안 전 지사는 노무현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임기 내에 공직을 맡지 않았다. 2005년 광복절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자 당시 여당 대표 앞으로 자신을 제외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그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은 “그는 내 동업자이자 동지라고 감히 말한다.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뒤에도 가시밭길은 이어졌다. 안 전 지사는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충남 논산 출마를 준비했지만 ‘금고 이상 형 공천 배제’ 원칙에 따라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같은 해 원외 신분으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당선된 그는 민주당 출신 최초로 2010년과 2014년 충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오르며 ‘안희정 열풍’을 만들어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특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대연정 등 통합적 가치를 주장해 ‘확장성’을 갖췄다는 평까지 받았다.

안 전 지사의 정치적 유산은 성폭행 폭로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트위터 지지자 모임도 6일 해체를 선언하며 “그의 철학과 가치는 모두 허위임이 명백해졌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적폐청산 흐름에 밀려 지난 대선에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안 전 지사의 ‘통합’ 가치는 여권에 꼭 필요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욱 참담하다”고 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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